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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을지로의 수많은 인쇄소와 공구상가들은 오후 6시만 되면 문을 닫아요. 주변은 빌딩숲이어서 시끌벅적한데 여기는 아주 조용한 섬 같아요. 그런데 반전이 있어요. 엘리베이터도 없는 허름한 건물 3층으로 올라갔더니 근사한 나만의 공간이 나타나는 거예요. 도시인들의 휴식처 역할을 하는 거죠."


을지로 3가에서 카페 '잔'을 운영하는 루이스 박 대표(46)는 최근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을지로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영국 런던에서 10년 동안 살면서 패션과 사진 작업을 해온 그는 "런던, 뉴욕 등에서 역사를 갖춘 구도심이 새롭게 조명받는 현상을 눈여겨 봤다"며 "한국에서도 강남, 신촌 등 천편일률적인 모던함에 싫증을 느낀 사람들이 구도심을 재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 이곳을 택했다"고 말했다.


종로 익선동에서 카페 '식물'을 운영하며 노하우를 쌓은 그는 지난해 11월 을지로에 잔과 사람 사이의 인연을 컨셉으로 두 번째 카페를 차렸다. 주변 직장인들 뿐만 아니라 멀리서 소문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매달 30~40% 이상씩 매출이 늘고 있다.


#2

"버려진 골목이던 을지로가 이렇게 핫한 곳이 될 줄 몰랐어요. 어수선하고 낡은 느낌이라서 사람들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끼는 것 아닐까요?"


4년 전 '커피 한약방'을 개업하며 일찌감치 을지로에 정착한 강윤석 대표(48)는 최근 을지로의 변화가 낯설다고 했다. 연극배우 겸 목공예 장인인 그는 을지로 3가의 한 골목길이 마음에 들어 이곳에 1950년대 분위기를 내는 카페를 구상했다. 버려진 자개장을 개조해 소품으로 쓰고, 오르간, 괘종시계 등으로 예스러운 인터리어를 직접 꾸몄다. 흔한 아메리카노를 메뉴에서 없앤 대신 수작업으로 내리는 필터커피로 커피 맛에 정성을 들였다. 한약처럼 몸에 좋은 커피를 만든다는 의미로 이름도 커피 한약방으로 지었다.


시간여행을 한 듯한 공간에 반해 지방에서까지 찾아오는 손님이 늘며서 커피 한약방은 을지로의 명소가 됐다. 매출도 매년 두 배씩 늘고 있다. 그는 "처음엔 대로가 아닌 골목길에 커피숍을 낸다는 아이디어를 주위에서 반대했지만 이젠 그게 차별화 포인트가 된 것 같다"며 "원래 1층에만 매장이 있었는데 손님들의 사랑을 받다 보니 건너편에 디저트숍 혜민당을 열었고, 2층과 3층으로도 공간을 확장했다"고 말했다.


#3

"이곳엔 정신 없이 일하는 인쇄소 아저씨들 뿐이었어요. 그런데 이젠 젊은 사람들도 알음알음 찾아오잖아요. 번잡함 속에 여유로움이 있는 그런 상반된 조화가 마음에 들어요."


지난 2월 을지로 인쇄소 골목에 카페 '백두강산'을 오픈한 백재희(25), 강경미(38) 대표는 을지로를 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조소학과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카페 내부를 아예 다방처럼 꾸몄다. 그러면서도 샹들리에, 꽃무늬 커튼 등 곳곳에 멋스런 소품을 배치해 화려한 분위기를 냈다. 백 대표는 "일본에서 오래된 다방들을 돌아다니면서 영감을 얻었다"며 "요즘 카페들이 다 엇비슷한데 저희는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간판도 안 달고 홍보도 거의 못 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오시는 분들이 꽤 있다"며 "매장 일부를 무명 작가들의 전시 공간으로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카페 '잔' 루이스 박 대표, 카페 '백두강산' 강경미 대표, '커피 한약방' 강윤석 대표(왼쪽부터)


인쇄소와 공구상가, 전통식당으로 가득한 을지로에 색다른 커피 향기가 피어 오르고 있다. 잔, 커피 한약방, 백두강산 외에도 호텔 수선화, 십분지일, 신도시, CETU, 분카샤, MWM, 커피사 마리아 등 수십 곳의 카페와 펍이 성업 중이다. 이름만으로도 개성이 강하게 묻어나는 이 매장들은 간판도 달지 않고 대부분 허름한 건물의 꼭대기층에 위치해 작정하고 찾아가지 않으면 발견하기 쉽지 않다. 노래방 위, 골뱅이집 옆, 제본사 건물에 과연 카페가 있을까 싶은데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만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곳도 있다. 지역 사람들보다 멀리서 소문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카페 한 곳만 가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에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띄워 놓고 투어를 다닌다.


을지로에 이색적인 카페와 펍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대략 2년 전부터다. 을지로에서 45년간 공인중개사를 해왔다는 김형 대표는 "2015년 말부터 젊은 사람들이 임차료가 싼 공간을 찾아오고 있다"며 "이제 월세 100만원 이하 물건은 찾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 봄 새롭게 문 연 매장이 늘었다. 이들은 작업실로 쓰는 공간 일부를 카페와 펍으로 운영하며 임차료를 충당한다.



을지로의 변화를 연구해 책 '다시, 을지로'를 펴낸 김미경 작가는 "을지로는 저렴한 임차료와 편리한 교통을 찾아 이동해온 젊은 예술가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새롭게 재발견한 곳"이라며 "장사 자체가 목적이기보다는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은 아티스트들의 표현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좁은 골목길과 옛 공장 터가 주목받는 현상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경리단길, 망리단길, 문래동, 성수동, 익선동 등으로 이어져온 흐름이 을지로까지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김 작가는 최근 을지로가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로 '희소성'을 꼽았다. 서울 한복판 구도심에는 높은 빌딩 혹은 궁궐 같은 유적지가 대부분인데 을지로는 유일한 제조업 지역으로 생존해 있다는 것이다. 김 작가는 "제조업장의 모습이 풍경이 되고 여기에 문화예술이 섞여 독특한 문화적 현상을 만들어냈다"고 덧붙였다.


천편일률적인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즐비한 서울에서 개성 강한 을지로 카페들은 차별화된다. 어떤 매장에 들어가도 공간을 만든 주인의 개성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홍보는 인스타그램 등 SNS를 이용하는 것이 전부다. 지난 3월에 카페 MWM을 오픈한 인테리어 디자이너 최수지 대표(31)는 "찾기 힘들고 장소도 비좁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손님들이 알아서 찾아온다"며 신기해했다. 그는 "처음엔 건물에 간판 달 곳이 없어서 안 달았는데 이젠 굳이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카페를 나오니 다시 인쇄장비와 종이 냄새가 진동하는 골목이다. 을지로에서 오토바이로 인쇄물을 나르는 일을 30년 간 해왔다는 이모 씨는 "이 동네에 젊은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는데 하루 벌어 살다 보니 뭘 하는 곳인지 잘 모르겠다"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산업화 시대와 소비 시대의 삶의 터전이 오묘하게 공존하는 곳이 을지로다.


을지로는 조선시대엔 황토현 또는 구리개라고 불렸다. 음악을 가르치던 장악원, 이순신 장군 생가, 허준 선생이 진료하던 혜민원이 이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일제시대엔 황금정통이라 불렸는데 동양척식주식회사, 식산은행 등 금융의 중심지이자 인쇄업이 활발한 곳이었다. 광복 이후인 1946년 을지문덕 장군의 성을 따서 을지로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1966년 판자촌이 철거되고 1968년 국내 최초 주상복합 세운상가가 지어지면서 산업개발 시대의 상징이 됐다. 인근에 기계부속품, 공구, 철물, 전자제품 상가가 자리잡은 것도 이때부터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방치되면서 30년 가까이 사실상 죽은 상권이었다.


2015년 서울시가 '다시 세운' 프로젝트 등 도시재생 계획을 추진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을지로의 변화는 이제 시작단계인 도시재생의 성과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젊은 예술가들이 을지로로 찾아온 것은 자발적인 움직임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도시재생본부 관계자도 "공교롭게도 다시 세운 프로젝트가 시작한 시점과 을지로에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점이 비슷해서 우리도 눈 여겨 보고 있다"며 "그러나 서울시의 도시재생 사업은 세운상가 부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변화가 빠르다 보니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김 작가는 "예전 을지로는 정말 숨겨진 곳이었는데 이젠 포털 검색으로 충분히 찾아올 수 있을 만큼 인지도를 얻었다"며 "최근 제조업장들이 나가고 카페와 펍이 들어오는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빨라져 젠트리피케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입주한 한 카페의 대표는 "5년 보고 들어왔는데 2년 정도 남은 것 같다"며 "변화의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 당황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작가는 "지금 이 지역에서 살아가는 원주민들이 애꿎은 피해를 보지 않도록 행정적 보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뉴욕의 소호, 첼시, 미트패킹, 윌리엄스버그 등 지금 트렌드를 선도하는 지역은 대부분 한때 버려진 공장지대였다. 제조업체들이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가면서 임차료가 저렴해지자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찾아오면서 변화가 시작됐고 이젠 멀리서 관광객이 찾아오는 메인 스트리트가 됐다.



역사를 간직한 채 잠들어 있던 을지로의 변화 역시 낡은 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한 예술가들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김 작가는 "일제 적산가옥부터 근대식 건축, 현대식 건축이 모두 공존하는 을지로는 곳곳에 숨겨진 역사가 즐비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새로움을 발견하려는 재미있는 시도들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는 '보이지 않는 도시'에 "도시는 기억으로 넘쳐흐르는 파도에 스펀지처럼 흠뻑 젖었다가 팽창한다"고 썼다. 수많은 기억을 머금은 을지로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팽창할까. 지금 이 시간에도 을지로에는 땀 흘리는 아저씨들 사이로 힙한 공간을 찾아온 젊은이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매일경제신문 5월 19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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