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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 개봉작 중 흥행에선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이대로 묻히기엔 아까운 영화 4편을 골라 소개한다. 혹시 놓쳤다면 뒤늦게나마 꼭 챙겨보시길.



1. 우리들


한 마디로: 왕따 당하는 아이의 감정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영화


올해 한국영화계의 보석 같은 발견이다. 작은 이야기를 통해 큰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방식이 탁월하다.


초등학교 4학년 여자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의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돈, 가족, 친구에 따라 편이 갈라진다. 가난한 집 아이와 부잣집 아이, 엄마의 사랑을 받고 큰 아이와 엄마가 없는 아이, 친구가 없는 아이와 친구가 없어도 되는 아이 등. 아무런 거리낌없을 것 같은 아이들 세계에서도 편견은 힘이 세다. 게다가 왕따 사이에도 또 왕따가 있다.



첫 장면은 피구 시합이다. 아이들끼리 서로 편을 가르는데 주인공 선에게는 끝까지 불러주는 팀이 없다. 아무도 친구가 되어주지 않는다. 방학이 시작되고 선은 새롭게 이사온 지아를 만난다. 선입견이 없는 지아는 선과 쉽게 친해져 둘은 단짝친구가 된다. 그러나 개학 첫 날, 지아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더니 선을 왕따시키는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영화를 만든 윤가은 감독은 영상원 재학 시절부터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영화를 주로 만들어 왔다. 스스로 13살 기억에 갇힌 어른이라고 말하는 그는 첫 장편인 이 영화로 올해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처럼 동심을 통한 깊이 있는 이야기가 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놓치지 마시라. 뛰어난 아역배우를 다 모아놓은 듯 아이들의 연기도 눈부시다.



2. 디시에르토


한 마디로: 트럼프 시대의 미국을 예견한 영화


멕시코 출신 조나스 쿠아론 감독은 '그래비티'의 각본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사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아들이라는 점 때문에 더 주목받아왔다. 하지만 그의 두번째 연출작인 '디시에르토'는 그가 아버지 만큼 재능있는 감독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이 영화를 통해 그는 내년 아카데미 영화상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영화의 배경은 텍사스-멕시코 국경지대다. 주인공 이름은 매우 상징적인 '모세.' 모세와 그의 동료들은 국경을 넘어 미국 밀입국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들을 막는 자는 경찰 같은 공권력이 아닌 민간인 킬러다. 이민자들이 무조건 싫은 카우보이 샘은 총을 들고 사냥에 나선다. 아무리 뛰어도 숨을 곳 없는 허허벌판에서 숨막히는 추격전이 펼쳐진다.


감독은 이 영화를 '그래비티'의 스핀오프로 기획했다. 우주와 국경은 전혀 달라 보이지만 사실 속성은 같다는 것이 감독의 의도다. 광활하고 평온해 보이는 풍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숨쉬기도 힘들 만큼 척박하고 좁은 폐쇄공간 안에 사람이 갇혀 있다.


영화는 마치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프렌치 커넥션'처럼 많은 대사없이 액션으로만 이루어졌다. 특히 벌판 사이에 솟은 바위산에서의 추격전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영화가 개봉한 여름엔 멕시코 불법이민을 막기 위해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고 공약한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았으나 트럼프 정부 출범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돌아보니 이 영화는 국경지대의 암울한 미래를 예견한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3. 클랜


한 마디로: 군사독재의 어이없는 부작용을 보여주는 영화


모처럼 한국을 찾은 아르헨티나 영화지만 안타깝게도 6500명의 관객만 극장에서 이 영화를 선택했다. 아르헨티나 역시 한국처럼 1980년대에 군사독재 정권이 민주정부로 이양됐기에 양국 상황을 비교해볼 부분이 많은데 아쉬운 결과다.


영화의 배경은 198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 독재정권의 몰락기. 전직 군인인 푸치오는 가세가 기울면서 새로운 패밀리 비즈니스를 구상한다. 그것은 자신의 장기(?)를 살려 사람들을 납치,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것. 3남 2녀의 자식들까지 동원한 대담한 이 사업은 순탄하게 흘러가지만 아들의 변심으로 세상에 폭로된다.


납치, 고문, 폭행, 살인을 자행하던 군사정부의 꼭두각시가 새 시대에 적응 못하고 벌인 이 이야기는 1980년대 아르헨티나에서 벌어졌던 실제 사건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어서 아르헨티나에서 논픽션과 TV 드라마 등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되고 있다.


사람을 감금해놓고 태연하게 가족 기도를 하는 모습, 그와중에 자식을 챙기는 부성애 등 영화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계속 보여주며 시스템이 인간을 어떻게 망쳐놓는지를 묻는다.


아르헨티나에서 사회문제를 소재로 한 영화를 계속 만들고 있는 파블로 트라페로 감독은 이 영화로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은사자상)을 받았다. 1980년대를 재현한 미술과 미장센도 탁월하다.



4. 트루스


한 마디로: 진실을 보도하는 사명을 띤 언론인들이 꼭 봐야할 영화


올해 '스포트라이트'가 아카데미 영화상 작품상을 수상하며 언론인을 소재로 한 영화가 주목받은 적 있는데 '트루스' 역시 '스포트라이트' 만큼 진실에 목마른 언론인의 활약을 그린 영화다.


'내부자들' '터널' 등 최근 한국영화에서 언론인들이 대개 악역을 도맡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두 편의 미국영화에서 보여지는 언론인의 세계는 기본에 충실하다. 외압에 굴복하지 않고 직업윤리에 충실하게 해야할 보도를 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CBS의 간판 뉴스 프로그램 '60분'의 베테랑 프로듀서 메리 메이프스와 인기 앵커 댄 래더다. 2004년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때 메이프스는 부시의 군복무 비리의혹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고 이를 집중 보도한다. 그러나 언제나 적은 디테일에 있는 법. 꼬투리잡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달을 가리키면 달보다 손가락에 문제가 있다고 공격하고 여론은 그 손가락만 본다.


메이프스와 래더는 생각지도 못한 곤경에 처한다. 증거를 입수하게 된 경위의 문제점이 보도의 진실성까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영화는 25년간 언론인으로 활약하며 에미상을 수상했지만 이 사건으로 언론계를 떠난 여성 언론인 메리 메이프스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했다.


'조디악'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등의 각본을 쓴 제임스 밴더빌트의 감독 데뷔작인 이 영화는 만듦새가 썩 고른 영화는 아니지만 스토리 자체는 훌륭하다. 케이트 블란쳇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뽐내는 중년의 농후한 멋을 볼 수 있기도 하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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