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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연두교서를 발표하던 대통령이 사라진다. TV를 통해 연설을 지켜보던 주택도시개발부 장관 톰 커크맨은 당혹스러워하다 창문을 연다. 멀리 불타고 있는 국회가 보인다. 잠시 후 검은 슈트 차림의 건장한 남자들이 찾아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백악관으로 가셔야 합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대통령입니다."



넷플릭스의 새로운 오리지널 시리즈 '지정 생존자(Designated Survivor)'는 어느날 갑자기 미국 대통령이 된 남자의 이야기다. 인기 미드 '24'의 잭 바우어 요원 역할로 친숙한 키퍼 서덜랜드가 초보 대통령 커크맨 역을 맡았다. 총 13부작으로 북미에선 ABC가 방영하고 한국을 포함한 북미 외 지역에선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급된다.



'지정 생존자'는 대통령과 내각 멤버가 한자리에 모일 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내각 구성원 중 한 명은 반드시 격리돼 있어야 하는 제도에서 따온 제목이다. 국회 폭파로 대통령과 장관, 상·하원의원, 대법관 등이 모두 즉사하면서 권력 서열 11위 커크맨은 한밤중에 후드티 차림으로 백악관으로 불려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한다.


급작스런 무정부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서라지만 어제까지 내각의 변방에 있던 각료가 대통령이 됐다. 모두가 미심쩍은 눈길로 그를 바라본다. 미시간주지사 제임스 로이스(마이클 가스톤)는 내 위에 아무도 없다며 전화를 끊고, 군 지휘관 해리스 코크란 장군(케빈 맥넬리)은 도시개발업자 명령 따위를 따라야겠냐며 쿠데타 계획까지 세운다. 여론도 싸늘하다. 언론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며 몰아세운다. 커크맨은 이들을 설득하고 국민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국회를 공격한 배후세력을 찾고 위기에 처한 국가를 바로 세워야 한다.



백악관을 배경으로 한 미드는 그동안 큰 인기를 얻어 왔다. 대통령의 정책 결정 과정에 관한 정교한 이야기 '웨스트윙', 전쟁 이후 대테러 작전 배후의 음모를 담은 정치 스릴러 '홈랜드', 백악관을 차지하기 위한 온갖 권모술수를 그린 '하우스 오브 카드' 등 현실에 들이댄 날카로운 메스가 인기 비결이었다. '지정 생존자'는 이 드라마들의 계보를 잇는다. 권력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이 죄다 죽었어도 백악관은 여전히 분주하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계략은 계속된다. 커크맨은 중심을 잡고 이들과 맞서야 한다. 그 과정에서 유약한 남자였던 그는 점점 강인하게 변해간다.


'지정 생존자'를 보고 있으면 리더의 자질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커크맨은 수시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자신에게 불리한 점을 감추는 거짓말로 논란을 만들지 않을 것인지, 혹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더라도 진실을 밝힐 것인지. 커크맨은 어렵더라도 후자를 택한다. 그는 9·11 테러의 화풀이를 엉뚱한 나라를 침공하는 것으로 했던 부시처럼 되지 않으려 배후세력에 대한 정보를 몇 번이고 검증한다. 또 가족, 윤리, 자유 같은 가치들이 위기에서도 침해받지 않아야 한다고 믿고 전체주의자들에 맞선다.



미국 대선 시즌에 맞춰 등장한 미국 드라마지만 청와대의 리더십 공백기에 직면한 한국에도 꼭 필요한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지난 4년간 추악한 행위들을 감추느라 불통 통치를 해온 대통령으로 인해 마음이 심란한 사람들에게 이 드라마를 권한다. 준비 안된 초보 대통령으로 시작한 커크맨은 시간이 지날수록 대통령으로써의 모습을 갖춰 간다. 그는 자신에게 직언하는 부하를 더 높은 자리에 앉히고 난국을 틈타 법 위에 군림하려는 자들은 가차없이 내친다. 참모들과 수시로 격의없이 토론하고 자신의 이익이 아닌 국가의 이익을 위해 고민한다. 우리가 기대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이런 것 아니었던가.


기억에 남는 한 장면. 취임식이 끝난 뒤 커크맨은 화장실에서 자신이 대통령 자리에 함량 미달이라며 비판한 연설 담당 비서관 세스 라이트(칼 펜)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자네는 내가 사퇴하기를 바라나?"


라이트의 대답.


"네, 국가를 위해서입니다."


커크맨은 뛰어난 능력을 가진 그를 해고하는 대신 대변인으로 승진시킨다. 이후 커크맨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라이트는 누구보다 충직하게 커크맨 정부를 대변한다. 비판자들을 나쁜 사람이라고 매도하고 돌쇠같은 가신들로만 국정을 운영했던 박근혜 정부와 대비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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