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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 스트리트>는 <원스> <비긴 어게인>을 만든 존 카니 감독의 세 번째 음악영화입니다. 세 편 모두 힘겹게 살아가는 주인공이 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담고 있죠.


<원스>는 극도로 로맨스를 자제하고 어쿠스틱 노래만으로 승부했다는 점에서 오리지널리티가 있다고 칭송받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두 작품은 다릅니다. 적절한 로맨스와 뮤지컬을 연상시키는 비주얼을 담고 있어 조금 더 드라마틱합니다.


한편에선 <비긴 어게인>과 <싱 스트리트> 역시 어쿠스틱 음악 영화라는 점에서 감독이 '자기복제'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만 제 생각에는 감독이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는 생각이 더 강합니다. <비긴 어게인>은 뉴욕이라는 도시를 기존 영화에서와 다르게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었고, <싱 스트리트>는 1985년 감독이 살던 더블린으로 시간여행해서 감독의 초심을 보여준 영화이기 때문에 충분히 차별화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원스> <비긴 어게인> <싱 스트리트>


개인적으로는 세 편 중 <싱 스트리트>가 가장 좋았고, 그 다음 <원스>, <비긴 어게인> 순입니다. 누군가의 자전적인 스토리가 담긴 영화는 아무래도 울림이 더 큽니다. 각본 자체도 <싱 스트리트>가 가장 잘 썼습니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입해 힘을 잃은 생물학적 아버지와 편협한 카톨릭 신부를 대비시킨 것도 그럴 듯하고요. 뭐 완벽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비긴 어게인>의 밋밋함에 비하면 훨씬 좋습니다.


하지만 흥행 성적은 <싱 스트리트>가 가장 나쁩니다. '박스오피스 모조'의 집계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벌어들인 돈은 <비긴 어게인> 6300만 달러, <원스> 2000만 달러, <싱 스트리트> 834만 달러 순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제가 생각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싱 스트리트>에는 스타 배우가 전혀 없습니다. <비긴 어게인>에는 키이라 나이틀리, 마크 러팔로, 애덤 리바인이 있었죠. 하지만 존 카니 감독은 키이라 나이틀리의 연기에 만족하지 못해 당시에도 불화설이 있을 정도였고 이에 차기작인 <싱 스트리트>는 모두 신인으로 캐스팅했습니다. 그래서 신선함을 얻었지만 대중의 눈길을 확 잡아끌기엔 부족했죠. 둘째, 뉴욕과 더블린이라는 배경의 차이도 있습니다.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현대 뉴욕이라는 도시와 모두가 떠나고 싶어한 1985년의 더블린은 확실히 관객의 영화 선택에도 영향을 미칠 테니까요.


하지만 위기 속에 영웅이 탄생하고, 고통 속에 예술이 나온다고 1985년 더블린 싱 스트리트 학교에서 벌어진 이 이야기는 <원스> <비긴 어게인>만큼 주목받아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영화 <싱 스트리트>의 특별함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뮤직비디오 시대의 음악영화


영화의 배경은 경제위기로 실업률이 치솟던 1985년 더블린입니다. 14세 소년 코너(퍼디아 월시 필로)는 아버지의 돈벌이가 시원찮아지자 사립학교를 나와 카톨릭계 싱 스트리트 학교(Synge Street Christian Brothers School)로 전학갑니다. 지금이야 뛰어난 과학교사를 보유해 유럽에서 유수의 과학상을 휩쓸고 있는 학교라고 합니다만, 영화 속에 등장한 당시 이곳은 온갖 문제아들을 모아 놓은 듯 험악함 그 자체입니다.


절망하던 코너는 길을 지나다가 우연히 모델 지망생인 16세 소녀 라피나(루시 보인턴)를 알게 되고 그녀를 뮤직비디오에 출연시키기 위해 학교에서 아이들을 끌어모아 밴드를 결성해 음악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마침 음악에 대해 박식한 형 브렌든(잭 레이너)의 도움으로 코너가 만드는 음악은 점점 더 틀을 잡아갑니다.


1980년대는 전자음악과 뮤직비디오의 시대입니다. 어쿠스틱으로 회귀하는 것은 1990년대 이후입니다. 말하자면 <싱 스트리트>는 <원스>와 <비긴 어게인>을 거슬러 올라가 이 음악들의 근원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단순히 연주하는 장면을 찍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영상이 하나의 시너지를 내기 시작한 초창기 뮤직비디오를 보여주면서 이것이 지금 음악영화들의 뿌리라고 말합니다. 꾸미지 않은 어쿠스틱인 <원스>와 신스팝 음악과 어쿠스틱이 적절한 타협을 이룬 <비긴 어게인>조차 듀란듀란과 아하의 상상력 넘치는 뮤직비디오에서 시작했다는 것이죠.


부모 세대들은 립싱크하는 가수들이 무슨 뮤지션이냐며 비웃지만 당시 젊은이들은 디페쉬 모드, 더 큐어, 모터헤드, 홀 앤 오츠 등 강렬한 비주얼을 동반한 사운드에 열광했습니다. 코너는 이들을 벤치마킹해 단지 노래만 하는 것이 아니라 8mm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뮤직비디오를 찍습니다. 지금 보면 스모키한 화장과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카메라 등이 촌스러워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초기 뮤직비디오 시대의 순수함이 눈길을 잡아 끕니다.


글램 록을 시도하는 싱 스트리트 밴드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


어떤 영화를 볼 때 이것은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겠구나 라고 느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싱 스트리트>도 그렇습니다. 향수 혹은 아련함이라고 할까, 영화가 그 시절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장면들, 또 실제 겪어보지 않고는 굳이 이렇게 표현하기 힘든 부분들이 있습니다.


가령 이런 장면입니다. 집 밖에 앉아 홀로 술을 마시고 있는 엄마를 코너와 브렌든이 계단에 앉아서 지켜봅니다. 브렌든은 코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는 이곳을 떠나 항상 스페인으로 가고 싶어 했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데려다주지 않았어. 스페인을 생각하는 이 시간이 엄마의 행복이야." '행복한 슬픔'을 한 컷으로 표현하는 장면인데요. 경험에 의하지 않고는 나오기 힘든 명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싱 스트리트>의 브렌든과 코너 형제


또, 든든하면서 의지가 되는 형 브랜든은 길을 잃고 헤매는 코너에게 길잡이가 되어줍니다. 이는 감독에게 그런 형이 없었다면 결코 만들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자신의 꿈을 포기한 백수지만 아는 것은 엄청 많은 형이 착하기까지 하다니요. 보통은 조금 더 현실적으로 형과의 갈등을 그렸을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엔딩 크레딧에 이 영화를 형에게 바친다고 밝히고 있네요. <비긴 어게인> 역시 존 카니 감독이 당시 생을 마감한 형 짐 카니에게 바친 영화였죠. 당시 존 카니는 한 인터뷰에서 <비긴 어게인>의 마크 러팔로 캐릭터가 바로 25살 때의 짐 카니에게서 따온 것이라고 밝힌 적 있었으니 <싱 스트리트>에서는 짐의 스무살 시절을 볼 수 있는 셈입니다.


존 카니 감독은 실제로 싱 스트리트 학교를 다녔고, 학창 시절 밴드를 결성했고, 더블린을 떠나 잉글랜드로 왔습니다. 단, 영화 속 주인공 코너처럼 보컬이 아니라 베이시스트였습니다. 졸업 후엔 '프레임스'라는 밴드의 베이시스트로써 음악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죠. (<원스>의 주인공 글렌 한사드는 '프레임스'의 리드 보컬 출신입니다.) 영화에서처럼 주위에 예쁜 소녀가 있었지만 한 번도 말을 걸어본 적은 없고, 커버 밴드 아버지를 둔 학생과 친해져 음악을 만들었으며, 뮤직비디오를 찍으러 이곳저곳 다녔고, 새총으로 위협하는 험악한 친구와 싸운 적도 있다고 합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시네마 천국> <친구> 같은 영화들이 그렇듯이 <싱 스트리트>는 고향을 떠나 성공한 감독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쓴 이야기입니다. 코너는 감독 자신의 어린 시절이 투영된 인물이고요. 학창 시절 가졌던 꿈, 그 당시 하고 싶었던 일, 할 수 없었던 일, 기울어가는 가정을 바라보는 절박함, 갑갑한 곳을 떠나야 한다는 결심, 첫 사랑의 떨림, 쉽게 무너지는 자존심, 이해할 수 없는 제도에 대한 반항, 무식해서 더 용감한 허세 등이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이라는 감독의 프레임에 담겨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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