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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 버스를 탄 그는 아내와 통화를 하더니 휴대폰을 다른 승객 주머니에 넣고 버스에서 내린다. 위치 추적을 따돌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를 미행해온 검은 재킷을 입은 남녀가 나타난다. 남자는 그들을 피해 지하로 도망가고, 이 모습을 감시 카메라로 지켜보던 CIA는 그를 놓친다. 그 사이 남자는 검은 재킷의 총에 맞아 쓰러진다.



초반 10분 동안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남자가 죽는 영화 <크리미널>은 숨가쁘게 직선으로 달리는 영화다. 죽은 남자의 정체는 CIA 요원 빌(라이언 레이놀즈). CIA 영국지부장 퀘이커(게리 올드만)는 빌의 뇌신경을 다른 사람의 두뇌에 이식해 그가 어딘가에 숨겨둔 해커를 찾으려 한다. 기억이식 수술을 맡은 프랭크 박사(토미 리 존스)는 실험 대상으로 전두엽이 발달하지 않아 세상 물정 모르는 난폭한 범죄자 제리코(케빈 코스트너)를 지목한다. 이제 빌의 기억을 이식받은 제리코는 영문도 모른 채 CIA와 범죄 조직으로부터 동시에 쫓기며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영화 <크리미널>은 기억 이식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첩보물에 응용한 스릴러다. 쫓고 쫓기는 추격신과 빌의 유족과 제리코가 ‘유사 가족’이 되는 드라마가 영화를 이끌고 가는 두 축이다. 오랫동안 미국의 아버지 상을 구축해온 노장 케빈 코스트너는 흉악한 범죄자를 연기할 때도 누군가의 아버지처럼 보인다. 덕분에 흉악범인 제리코가 죽은 빌의 아내 질리언(갤 가돗)과 가까워지는 과정이 설득력을 얻었다.



케빈 코스트너 외에도 게리 올드만, 토미 리 존스 등 1990년대 할리우드를 풍미했던 베테랑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영화의 최대 수확이다. 이들 셋이 함께 영화를 찍은 것은 올리버 스톤 감독의 ‘JFK’(1991) 이후 무려 25년 만이다.



감독은 법학도 출신의 이스라엘인 아리엘 브로멘. <크리미널>은 1980년대 미국 마피아 청부살인업자 리처드 쿠클린스키의 내면을 그린 영화 <아이스맨>(2012) 이후 그가 4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연출력과 스토리는 노장들의 연기투혼에 못 미친다. 전반적으로 이야기 구성이 단조롭고, 기억이식이라는 신선한 소재는 기억상실증 소재의 다른 영화들과 크게 차별화되지 않아 ‘소재주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단, 속도감 있는 스릴러를 찾는 관객이라면 2시간이 금세 지나갈 테니 시간을 투자해볼 만하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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