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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박다미 작가를 만나다



말 그대로 ‘퍼엉’ 하고 터졌다.


‘퍼엉’이라는 닉네임으로 더 잘 알려진 박다미(25) 작가는 2년 전 남자친구와 자신의 사랑을 모티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페이스북과 네이버 일러스트레이션 플랫폼 그라폴리오에 ‘편안하고 사랑스럽고 그래’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는데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반응이 왔다.



“제 그림을 인화해 벽에 걸어 놓고 인증샷을 보내주신 분도 있었고, 그림을 이불로 만들어 덮고 잔다는 팬도 있었어요. 처음엔 어리둥절했어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나라의 사람들이 제 그림을 좋아하다니 신기했어요.”


12일 경기도 분당 네이버 그린팩토리에서 만난 박 작가는 수줍은 표정으로 말했다. 현재 그의 페이스북 팬은 23만 명에 달하고, 그라폴리오 조회 수는 최근 1천만 회를 돌파했다. 페이스북 통계에 따르면 그의 그림을 좋아하는 팬들은 미국, 태국, 대만, 이탈리아, 멕시코 등 여러 대륙에 걸쳐 있다.


“만국 공통어인 사랑이라는 주제에 공감하는 것 같아요. 그림을 보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순간, 혹은 사랑했던 시간을 떠올리는 거죠. ‘내 이야기 같다’, ‘추억이 생생하다’, 심지어 ‘나를 스토킹 한 것 아니냐’는 댓글도 있더라고요.”



지금까지 한국에서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인식은 박했다. 서양이나 일본에서 하나의 예술 장르로 취급받는 것과 달리 ‘삽화’라고 불리며 출판물에 끼워 넣는 그림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디지털 기기에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이 아날로그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을 재발견하면서 다른 작품의 부산물이 아닌 개별 작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외국에서 닉네임 ‘puuung’로 알려진 박 작가의 그림은 선이 뚜렷한 서양 일러스트레이션에 비해 흐릿하게 그려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따뜻한 색을 사용해 몽환적으로 보이는 점이 특징이다. 그는 일상에서 두 남녀가 사랑을 느낄 때의 짧은 순간을 포착해 생생하게 드러낸다. 대사는 한 마디도 없지만 인물의 표정과 배경만으로 그림 속 상황이 직관적으로 전달된다.


퍼엉 '낮잠'


퍼엉 '무서운 꿈을 꿨어'


퍼엉 '빵야'


퍼엉 '수고했어'


“대개 일상에서 모티프를 얻어요. 예를 들어 악몽을 꾸고 일어난 여자를 남자가 안아주는 내용의 ‘무서운 꿈을 꿨어’라는 그림은 제가 실제로 악몽을 꾸고 깬 날 전화로 남자 친구가 위로해줬던 경험을 모티프로 삼았어요. 여기에 상상력을 가미해서 더 따뜻하게 그렸죠.”


배경의 경우 워낙 묘사가 꼼꼼해 사진을 보고 그린 것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대부분 상상으로 그린 것이다. 이때 건축 관련 서적에서 눈여겨 본 여러 공간의 모습들이 참고가 된다. 실제로 사는 곳이 그림 속 배경과 닮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그는 손사래를 치며 “환상을 깨고 싶지 않지만 평범한 원룸”이라고 답했다.



“한 작품을 그리는 데 스케치와 채색을 포함해 5시간 정도 걸려요. 저는 배경을 꼼꼼하게 그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배경에서 이야기가 피어나거든요. 배경을 자세하게 그리려면 힘들지만 즐겁게 작업하려고 때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춰요. 어제도 카페에서 그림 그리다가 옆에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고 노래를 불렀는데 생각해 보니 참 부끄럽더라고요. (웃음)”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대학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는 학생이기도 한 그는 최근 ‘글로벌에 도전하다’라는 제목의 네이버 TV 광고에 출연했다. 덕분에 주위에서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졌다.


“무엇보다 부모님이 기뻐하세요. 그림을 매주 화, 금요일 연재하고 있는데 작품을 올릴 때마다 휴대폰 배경화면을 매번 바꾸시면서 주위에 자랑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는 요즘 밀려드는 작업 의뢰에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그림 그리는 데 할애하고 있다. 연필을 잡을 수 있는 공간이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작업한다. 집, 카페는 물론 기차에서도 그린다. 최근 글로벌 브랜드의 일러스트 상품, 메신저 앱의 이모티콘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며 협업하고 있고, 또 한국을 비롯한 5개 국가에서 일러스트 책 출간도 계획하고 있다. 추진중인 작업들이 순조롭게 결실을 맺는다면 올해엔 국내외에서 ‘퍼엉’이라는 이름을 더 자주 접하게 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퍼엉’처럼 되고 싶은 크리에이터 지망생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사실 저는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은 아니었어요. 지금도 작년에 그린 그림 보면 부끄러워요. 조금씩 실력이 늘고 있는 게 제 눈에도 보일 정도예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다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보세요. 남이 어떻게 볼까 생각하는 대신 스스로 즐거운 그림을 그리세요. 자기 스타일대로 꾸준히 계속 그리다 보면 분명히 기회가 올 거예요.”


(매일경제에도 실렸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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