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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에 다녀왔습니다. 자유여행이 아니라 생전 처음 단체 패키지 투어를 해봤어요. 그동안 패키지 투어에 대해 편견이 있었는데 (도장 찍고 가는 여행에 쇼핑만 일곱 군데 들른다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이번에 가보니 그렇지 않더군요. 가이드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는 것 같았는데 40명이나 되는 저희 단체를 인솔해준 가이드가 참 재미있고 박학다식한 분이어서 즐거운 3박4일이었습니다. 노랗게 염색한 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작고 귀엽게 말하는 소년 같은 분인데 우리는 그가 들고 있는 빨간색 우산을 따라다녔습니다.


언젠가 나중에 자유여행하기 힘든 나이가 되면 패키지 투어를 또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번 오키나와 여행은 패키지 투어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함께 가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즐겁더군요. 결국 여행은 어떤 형태로 갔느냐보다는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오키나와 여행에서 들른 곳 위주로, 사진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오키나와의 나하 공항에 처음 내렸을 때 첫 인상은 별로였습니다. 훅~ 하고 뜨거운 바람과 끈적한 습기가 몸을 감싸 불편했는데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밟는 줄을 무려 1시간 30분 동안 기다려야 했거든요. 오키나와는 인기가 많은 관광지여서 관광객들이 계속 공항에 내리는데 출입국 수속을 담당하는 부스는 5곳밖에 없습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긴 줄을 서야하니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부터 들더군요. 다행히 공항을 빠져나와 점심을 해결하고나니 조금씩 적응이 되기 시작합니다. 우선 오키나와 월드로 향했습니다. 종유석 동굴과 유리공예촌 등이 있는 곳입니다.



옥천동 동굴은 사실 굳이 돈 내고 갈 만한 곳은 못됩니다. 이런 종류의 동굴은 세계 각지에 많습니다. 베트남 하롱베이에 가면 훨씬 크고 깊은 곳이 있고, 터키 이스탄불에도, 슬로베니아 포스토니아에도, 필리핀 팔라완에도, 충북 단양에도 있습니다. 그러니 굳이 동굴을 보기 위해 갈 필요는 없지만, 오키나와 월드에 온 김에 한 번 들러보는 정도라면 나쁘지 않습니다. 더운 날씨에 동굴로 내려가면 꽤 시원하거든요.



오키나와 월드에서 좋았던 것은 에이사 공연이었습니다. 30분 동안 야외 무대에서 펼쳐지는 군무로 북춤, 사자탈춤 등이 절도 있게 펼쳐집니다. 또, 오키나와에는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인 도공 장헌공의 후손이 살고 있는데 이들이 만든 도자기는 가치가 엄청날 뿐더러 도자기 기술을 전수해준 당시 도공은 신으로 추앙받고 있기도 합니다.


그밖에 오키나와에서 유명한 것은 유리공예입니다. 그런데 유리공예가 베네치아의 무라노섬처럼 예술품으로 발달한 것이 아니라 미군정 당시 생존을 위해 콜라병으로 만들어 팔기 위해 발달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오키나와의 역사를 살펴볼까요?



오키나와는 160여개의 섬들로 이루어진 일본의 최남단 현입니다. 12세기 류큐왕국이 건국된 이래 일본 본토와 대만 사이에서 독립국의 지위를 누렸던 곳입니다. 19세기말 메이지유신 때 일본에 복속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엔 27년간 미국의 식민지로, 1972년부터는 다시 일본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오키나와는 제주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빼어난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아픈 역사도 그렇습니다. 제주에선 해방 이후 주민들이 빨갱이로 몰려 처형당한 4.3사건으로 뭍 사람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것처럼, 오키나와 주민들 역시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총알받이로 쓰인 눈물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당시 일본군은 오키나와인을 강제징집해 가미카제 파일럿으로 사용했고, 아이를 업고 있는 여성의 몸에 부비트랩을 부착해 미군으로 보낸 뒤 폭발시키기도 했습니다. 또 1000여명에겐 일왕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집단자살을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오키나와 전투 때 무려 12만명의 오키나와인이 사망했습니다. 오키나와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였습니다.


일본과 미국에게 고통을 겪은 오키나와인들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꿈꾸는 스코틀랜드인과 북아일랜드인처럼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염원하고 있습니다.



오키나와인들이 일본을 싫어하는 것은 광주학살을 겪은 호남인들이 군사정권 후예들에게 등을 돌린 것을 떠오르게 합니다. '밧줄연안'이라는 뜻의 '오키나와'는 일본인이 류큐왕국을 식민지로 삼을 때 섬에 붙인 이름이어서 현지인들은 이곳을 오키나와라고도 하지 않고, 일본어도 잘 쓰지 않으려 합니다. 오키나와 출신 가수 아무로 나미에가 1990년대 초반 일왕 앞에서 기미가요를 부르지 않아 극우세력의 지탄을 받은 것도 유명한 사건이죠.


일본은 패전 이후 자민당 정권이 70년간 집권해오고 있는데 오키나와는 전통적인 야당 강세 지역입니다. 일본 총리도 어찌하지 못하는 곳이죠. 그동안 일본에선 오키나와인이 재일조선인만큼 차별받았는데 요즘엔 일본 사람들도 오키나와로 많이 이주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인들이 제주도로 많이 이사가는 것처럼 살기 팍팍한 대도시를 떠나 자연환경이 쾌적한 오키나와로 옮기는 것입니다. 오키나와 인구는 현재 140만명으로 5년전 130만명에 비해 급속히 늘고 있습니다.



오키나와현의 주도는 나하(Naha)시입니다. 오키나와섬의 남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오키나와섬은 류큐제도 남부의 세로로 길게 뻗은 섬입니다. 면적은 제주와 서울을 합쳐놓은 정도입니다. 북부는 산과 밀림이어서 사람들은 주로 남부에 거주합니다. 나하시엔 오키나와 인구의 절반이 넘는 70만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통체증이 꽤 심각합니다.


나하에는 2만5천명의 미군도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 숫자는 주한미군의 숫자와 비슷합니다. 1972년 미국이 섬을 일본에 반환할 때 군대는 계속 주둔할 것을 조건으로 명시했기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미군기지 반환을 위한 투쟁을 계속해오고 있고, 몇 년 전엔 미군기지 반환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시장과 참의원에 당선되기도 했지만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는 동북아와 동남아 일대 최적의 요충지여서 미국으로서는 대체 지역을 찾기 전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게다가 오키나와 주민들은 관광업 외에 미군을 상대로 한 임대업과 상업으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지금 오키나와에서 미군기지는 계륵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지금부터는 오키나와의 곳곳을 둘러보겠습니다.



몇 년 전 나하에는 모노레일이 개통됐습니다. 덕분에 나하 공항에서 모노레일을 타면 나하 시내까지 한 번에 갈 수 있습니다. 나하에는 대중교통 수단으로 버스와 모노레일이 있습니다.



제가 묵은 숙소는 나하에서 북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곳에는 담장 없는 멋진 집들이 몇 채 늘어서 있었습니다. 주로 미국인들이 별장처럼 지어놓고 사는 곳이라는데 잔디밭으로 들어갔더니 어젯밤 가든 파티를 즐겼던 흔적이 남아 있더군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국제거리를 거닐다가 망고 아이스크림이 보이길래 얼른 사들었습니다. 열대기후 지방을 여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디저트는 바로 망고쥬스나 망고 아이스크림입니다.


국제거리는 제2차 세계대전 후 폐허가 된 곳입니다. 당시 나하는 90% 정도가 파괴될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그뒤 급속한 성장을 이루어 국제거리는 쇼핑 중심가로 자리잡았습니다. 이곳엔 류보 백화점을 비롯해 인형, 전통주 등 다양한 기념품 가게와 식당이 즐비합니다.





미하마 아메리칸 빌리지는 미국의 샌디에이고 시포트 빌리지를 모델로 만든 쇼핑몰입니다. 대형 관람차를 비롯해 형형색색 건물마다 놀거리, 즐길거리가 풍부합니다. 미군기지의 미국인들이 즐겨 찾는 장소로 한국의 이태원 정도를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 오키나와 여행 (2) 아쿠아리움과 에메랄드 비치

>> 오키나와 여행 (3) 만좌모를 나와 스노클링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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