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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드 팔마의 1983년작 <스카페이스>를 다시 봤습니다. 오우삼의 <영웅본색>,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 등 많은 후대 영화들에 영향을 미쳤던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 대해 말하려면 몇 명의 이름을 거론해야 합니다.


먼저, 아미타지 트레일. 그는 28세에 요절한 작가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16세부터 범죄소설을 써왔는데 <스카페이스>는 그가 영화 판권을 판 첫번째 소설입니다. 영화는 1932년 하워드 혹스에 의해 완성됐지만 그는 영화를 보지 못하고 1930년에 심장마비로 급사하고 맙니다.


두번째로 거론할 이름은 하워드 혹스. 그는 <스카페이스>의 각본을 공동으로 썼습니다. 그는 활동하던 시절 존 포드와 오손 웰즈에 가렸지만 뛰어난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1932년작 <스카페이스>도 그중 하나고, <리오 브라보> <빅 슬립> <소유와 무소유>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아카데미가 외면한 거장을 꼽을 때 항상 거론됩니다. 프랑스의 [까이에 뒤 시네마]가 뒤늦게 발굴해 미국에 소개한 미국 작가 중 한 명이죠. 그는 스티븐 제이 슈나이더가 선정한 '죽기 전 꼭 봐야할 영화 1001편' 중 무려 11편이나 목록에 올렸는데 이는 알프레드 히치콕 다음으로 많은 편수입니다. 11편에는 위에 언급한 다섯 편 외에 <천사만이 날개를 가졌다> <빅 스카이> <아이 양육> <히스 걸 프라이데이> <요크 상사> <레드 리버> 등이 포함됩니다.


세번째, 벤 헤크트. 역시 <스카페이스>의 각본가입니다. 그는 시카고에서 신문 기자로 일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수필, 희곡, 소설, 시나리오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소설이 외설시비로 판매금지조치되면서 신문사에서 해고당한 뒤엔 뉴욕과 할리우드를 오가면서 희곡과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조지 스티븐스의 <강가 딘>, 윌리엄 와일러의 <폭풍의 언덕>, 알프레드 히치콕의 <스펠바운드> <악명>의 각본도 그가 썼습니다. 브로드웨이에서는 <신사와 숙녀>를 대표작으로 남겼습니다.


네번째, 올리버 스톤. 그가 1983년작 <스카페이스>의 각본을 썼을 때 그는 37세였습니다. 감독으로서는 데뷔작이 그저 그랬고, 알란 파커의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의 각본가로 이름을 알려가던 작가였습니다. 올리버 스톤이 정치적으로 논쟁적인 소재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우리는 이후 작품들을 통해 알고 있지만 <스카페이스>를 통해서도 조금 드러납니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가 터키 감옥에 갇힌 미국 대학생을 소재로 했던 것처럼 <스카페이스> 역시 원작에서 알 카포네와 이탈리아계 마피아였던 주인공을 쿠바 출신 미국인으로 바꾸었습니다. 또 볼리비아 마약 산업과 플로리다 커넥션이 소재로 쓰였는데 이는 2012년작인 <파괴자들>의 소재와도 연결되는 면이 있습니다.


다섯번째, 브라이언 드 팔마. <스카페이스>는 브라이언 드 팔마의 필모그래피 중 그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76년부터 1987년 사이의 한가운데에 있는 작품입니다. <캐리> <드레스 투 킬> <블로우 아웃> <바디 더블> <언터처블> 등 제목을 듣기만 해도 설레는 영화들 가운데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카페이스>는 아쉽게도 다른 영화들에 비해 못 미치는 편입니다. 매우 폭력적인데도 새롭지 않고 진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행에선 대성공을 거두었죠. 그의 영화는 히치콕이나 안토니오니, 에이젠슈타인 등 다른 거장의 영화들에서 빌려온 장면이 많은데 <스카페이스>는 <대부>를 연상시킵니다. 이탈리아계 이민자 대신 쿠바계 이민자로 바꾼 것도 왠지 드 팔마답습니다. <스카페이스>에서 알 카포네가 빠진 게 아쉬웠던지 드 팔마는 1987년작 <언터처블>에서 알 카포네를 등장시킵니다.



여섯번째, 알 파치노. <스카페이스>는 알 파치노 그 자체입니다. 알 파치노로 시작해 알 파치노로 끝납니다. 토니 몬태나라는 극중 이름이 유명해진 것도 알 파치노 덕분입니다. <대부>와 <대부 2>로 굳어진 그의 조폭 두목 이미지를 이 영화에선 재가공했다가 다시 산산히 부숴버립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영화 사상 가장 배짱 두둑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험한 남자를 연기했습니다. 특히 마약에 중독돼 점점 이성을 잃어가는 후반부 모습은 왜 그를 위대한 배우로 부르는지 알게 해줍니다.


일곱번째, 미셸 파이퍼. TV시리즈에서 인기를 얻고 있던 미셸 파이퍼가 할리우드에 진출해 세번째로 출연한 영화가 바로 <스카페이스>입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화장하고 몸매 가꾸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하지 않지만 왠지 비밀이 많을 것 같은 여자를 연기했습니다. 그녀는 1991년 알 파치노와 다시 만나 로맨틱 코미디 <프랭키와 자니>를 찍었는데 개인적으로는 <프랭키와 자니>의 프랭키가 더 마음에 드는군요.



1983년작 <스카페이스>를 2015년에 다시 보았습니다. 과거엔 화질 나쁘고 검열된 비디오로 보았기 때문에 몇몇 장면들이 굉장히 잔인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군요. 오히려 잔인하다고 느꼈던 대부분의 장면은 알 파치노의 광기어린 연기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스카페이스>를 보면서 두 가지가 좋았고 두 가지가 아쉬웠습니다. 좋았던 것은 조르지오 모로더의 전자음악과 알 파치노의 연기입니다. 알 파치노의 연기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으니 음악에 대해 말해보죠. 이탈리아 출신 음악가 조르지오 모로더는 <아메리칸 지골로> <캣 피플> <플래시댄스> <탑 건> 등으로 한때 잘나가던 영화음악가였죠. 특유의 전자음악이 지금 들으면 참 촌스럽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웅장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네요. 오르간 소리를 집에서 듣는 것과 성당에서 듣는 것이 전혀 다른 것처럼 말이죠. 오케스트라 연주가 나올 때와는 또다른 비장미가 느껴지는 음악이었습니다. 이런 스타일의 음악은 당시 <영웅본색>까지 이어졌었지요.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단순한 내러티브와 평면적인 캐릭터입니다. 원작에선 토니와 여동생과의 관계가 근친상간적으로 치달으며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데 이 영화에선 여동생이 토니가 애초 가졌던 순수한 마음을 상징하는 캐릭터로만 남았습니다. <스카페이스>의 서사구조와 비슷한 면이 있는 유하 감독의 <강남 1970>에서도 여동생 캐릭터가 토니의 여동생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죠. 그 원형을 본 것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 또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나간 뒤 한 방에 터뜨리는 서사구조 자체는 좋지만 이를 지탱해주는 에피소드는 가난하고 단선적이어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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