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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헬싱키는 어떤 모습일까?


시내에 어둠이 깔리고 가로등에 조명이 켜진다. 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오후 4시. 그러나 해가 졌다고 여행길마저 어두운 건 아니다. 겨울엔 낮을 허락하지 않는 이 도시는 밤이 되면 오롯이 빛의 도시로 바뀌니까. 디자인의 나라답게 예쁜 가로등이 낮부럽지 않게 화려하다. 곳곳에서 빛의 축제가 한창이다.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을 은은하게 비추는 거리 조명은 발걸음을 들뜨게 만든다.


“그 짧은 순간

나와 함께 했던 순간

그 고통스런 순간

그 달콤했던 순간”


에스플라나디 공원에서 핀란드의 독립을 노래한 시인 루네베리 동상과 마주쳤다. 시인은 쓸쓸했으나 그가 서 있는 자리는 결코 쓸쓸하지 않다. 이곳은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닮은 헬싱키의 상업 중심가. 핀란드 최대 스토크만 백화점을 중심으로 생활 도자기 이딸라, 디자인 브랜드 마리메꼬와 아르텍 매장이 늘어서 있고 반대편은 디자인 구역으로 연결된다.


마켓광장에 들러 노르웨이만에서 잡아온 싱싱한 연어 수프로 식사를 하고 160년 된 베이커리 숍에서 디저트를 맛봤다. 핀란드인이 즐겨 먹는 라크리치는 조금 고무 냄새가 나긴 하지만 독특한 질감이 신기하다. 걷다 보면 한국서 인기 많은 이딸라 제품을 반값에 구입할 수 있는 중고 상점도 있고 유기농 재료를 파는 식료품점도 나타난다.



주요 명소들이 시내에 몰려 있어 걸어서 다 둘러볼 수 있다는 것은 헬싱키 관광의 최대 장점이다. 붉은 벽돌과 황금색 돔이 멋드러진 우스펜스키 대성당. 이곳은 러시아 식민지 시절 지어진 비잔틴 슬라브 양식의 동방정교회다. 조금만 더 가면 커다란 천연 암석을 뚫어서 지은 템펠리아우키오 교회가 보인다. 내부에 들어서면 우주선을 닮은 돔 모양이 뿜어내는 장엄한 광경에 감탄하게 된다. 세계 각지의 건축가들이 조명과 음향 설계를 참관하기 위해 이 교회를 찾는다고 한다.


핀란드가 자랑하는 음악가 시벨리우스 공원에선 24톤의 강철 600개로 만든 파이프오르간 조형물을 만날 수 있고, 대성당 앞 카우파 광장엔 기념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분주하다. 고풍스런 중앙역엔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가는 기차가 대기중이다.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을 붙잡고 밖으로 나와 바다와 마주쳤다. 발트해로 연결된 핀란드만을 바라보니 짧지만 강렬했던 여정이 떠오른다. 가로등 불빛 사이로 눈이 다소곳이 내리고 있었다.



(이 글은 매일경제신문 2015년 1월 26일자에 실렸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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