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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꼬리를 먹는 뱀이 있다면 어떨까? 뱀은 꼬리가 먹이인 줄 알고 먹지만 결국 사라져가는 것은 자신이다. 해외토픽에 가끔 사진으로 등장하는 꼬리를 먹는 뱀은 고대 그리스인들에겐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꼬리를 문 뱀을 ‘우로보로스’라고 명명했는데 이는 순환, 불사, 영원을 상징했다. 우로보로스는 스스로 자신을 만들어내고, 자신을 임신시키며, 스스로를 먹어버려 죽는다.


지난 7일 개봉한 영화 <타임 패러독스>는 우로보로스처럼 되풀이되는 숙명을 다룬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은 여자이자 남자이고, 아버지이자 어머니이며, 딸이자 아들이고, 부모이자 자식이다. 그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존재의 시작이면서 동시에 끝이다.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스토리를 좀 더 파헤쳐보자.


시간여행을 하면서 대형 범죄를 사전에 막는 범죄예방본부에서 근무하는 템포럴 요원(에단 호크)은 1975년 뉴욕에서 벌어진 대형 폭발 사건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1971년으로 가서 범인이 될 남자를 만난다. 그런데 그 남자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실 자신은 여자로 살아왔고 아이까지 낳았다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를 모두 갖고 태어났는데 아이를 낳고 난 뒤 여성으로서의 기능이 퇴화하고 남성 기능이 살아남아 지금은 남자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실제로 이런 일이 가능할까?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를 모두 가진 경우를 인터섹슈얼이라고 하는데, 현실에서 2000명~1만명 당 1명 꼴로 태어날 정도로 드물지 않다고 한다. 태어날 때 바로 발견되기 때문에 부모가 하나를 선택해 수술해주는 경우도 있고 혹은 성장 과정에서 하나가 퇴화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들은 성인이 될 때 성정체성 혼란을 겪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특징을 모두 갖춘 사람을 완전한 인간형으로 여겼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템포럴 요원은 미혼모의 사연을 듣고 그를 과거로 데려가기로 결심한다. 그를 임신시키고 사라져버린 남자를 처음 만난 순간으로 돌아가서 담판을 지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과거로 돌아가니 일이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한다. 그날 만나 사랑에 빠진 운명의 남자가 멀리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 뒤로는 어떤 부분을 이야기해도 스포일러가 될만큼 영화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1945년부터 1993년까지 다양한 시대를 넘나들면서 놀라운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영화는 SF 3대 거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로버트 하인라인의 단편소설 [모두가 좀비들(All You Zombies)](1959)을 스크린으로 옮겼는데 그는 한국인에겐 [스타쉽 트루퍼스](1959)로 친숙한 작가다.



영화의 원제는 ‘예정설’이라는 뜻의 ‘Predestination’으로 종교적,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는데 반해 한국 개봉명은 이야기 구조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바뀌었다. 타임 패러독스, 즉 시간 역설은 시간여행으로 과거를 바꾸면 미래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애초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는 개념으로 1980년대 <백 투더 퓨처>에서 과거로 간 주인공이 아버지의 연애를 망치면 미래의 자신이 존재할 수 없다는 설정 등이 대표적이다. 하인라인은 1940년대부터 시간 역설을 소재로 SF 소설을 썼는데 [모두가 좀비들]은 1958년 7월 11일 단 하룻동안 써내려갔다고 한다.


인터섹슈얼처럼 자극적인 소재를 다룬 영화는 흥밋거리 위주의 소재주의로 흐르기 쉽다. 그러나 영화 <타임 패러독스>는 그 유혹을 최대한 자제하고 동양의 윤회사상을 연상시키는 시간 역설을 구현하기 위한 비장의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영화는 플롯상 시간 배분에 있어 초반부가 늘어지는 아쉬움이 남지만 전체적으로 상당히 짜임새 있게 만들어졌다.


<언데드>, <데이브레이커즈> 등 저예산 영화로 강렬한 인상을 남겨온 호주의 스피어리그 형제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호주 출신 신예 사라 스누크가 에단 호크의 상대역인 미혼모 역을 맡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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