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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6월 1일, 영화는 닉슨 대통령의 국회 연설로 시작한다. 국회에 가득찬 3부 요인 사이로 닉슨이 연단에 올라가는 자료화면이 보여지는 가운데 나레이션이 흘러나온다. 나레이션만 없으면 영락없는 뉴스 자료 화면인데 나레이션도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하는데 그친다. 앞으로 펼쳐질 영화의 분위기를 암시하는 것처럼.


1976년작 <대통령의 음모>는 알란 J. 파큘라 감독의 다섯 번째 영화다. 1974년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가 펴낸 'All the President's Men'을 영화로 만들었다. 워싱턴포스트의 경쟁지인 뉴욕타임즈가 "언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취재"라고 극찬했던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친 과정을 담았다. 한국에서 올해 만들어진 <제보자>처럼 실제 취재 과정을 담은 영화의 원조 격인 셈인데 <대통령의 음모>는 취재 과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실제 인명을 써서 담담하고 드라이하게 전달할 뿐이다. 플롯은 직선적이고 어떤 트릭도 없다. 음악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뉴스 클립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때론 마치 재연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민주당 행사가 열린 워터게이트 호텔에 도둑이 들고 밥 우드워드(로버트 레드포드)가 이 사건의 취재를 맡는다. 16살 때부터 기사를 써왔다는 칼 번스타인(더스틴 호프만)이 밥의 파트너로 가세하는데 두 사람은 이 사건을 추적하면서 배후에 더 큰 도둑이 있음을 알게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취재원을 통해 두 사람은 이 사건이 공화당을 넘어 백악관, FBI, 검찰 등 모든 곳과 얽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의 취재는 1974년 8월 9일 닉슨 대통령이 사임할 때까지 무려 2년 동안 계속되는데 영화는 1973년 1월 20일 재선된 닉슨의 취임식에서 멈추고 그 이후는 타이핑 되는 기사의 헤드라인으로만 처리한다.



가장 뜨거웠던 워터게이트 사건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의 목적은 시끌벅적한 영웅담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작업방식 그 자체에 있다. 즉, 웹툰과 드라마로 사랑받은 <미생>이 상사맨의 '일'을 보여주며 주목받은 것처럼 이 영화 역시 기자들의 일 자체에 주목한 것이다. 두 사람이 어떻게 일을 했기에 남들이 못한 세계적 특종을 이끌어냈는지, 또 그 과정에서 어떤 위협이 있었는지를 차분하게 들여다보는 식이다.


사실 이는 대단히 모험적인 방식이다. 많은 영화 감독들이 <제보자>처럼 뜨거운 사건을 뜨겁게 그리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그리고 그 방식이 꼭 나쁜 것도 아니다. 목숨 걸고 취재한 팩트가 세상에 공개돼 역사가 바뀌는 과정을 감동적인 드라마로 만들면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움직일 수 있다. 그런데 <대통령의 음모>는 그 쉬운 길을 거부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이라는 대통령마저 하야시킨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언론 승리의 현장을 오히려 가장 차갑게 그리고 있다.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이 영화는 고전으로 살아남았다. <제보자> 역시 40년 후 여전히 기억될 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언론 현장을 다룬 영화들 중 <대통령의 음모> 만큼 철저한 고증과 높은 완성도를 지닌 영화는 단언컨대 없다.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의 취재 과정이 고독한 투쟁의 연속이었던 것처럼 이 영화가 택한 차가운 관조 역시 냉철한 선택이고 대단한 모험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영화는 알란 J. 파큘라 감독의 최고 작품으로 남았다.



뒤늦게 이 영화를 찾아볼 분들을 위해 영화의 뒷이야기이자 실존 인물의 뒷얘기를 적어보려 한다.


1. 영화 속에서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이 찾아낸 워터게이트 사건에 돈을 댄 다섯 명은 미첼, 스탠드, 맥그루더, 캄바치, 홀드먼이다. 미첼은 전 법무부 장관, 스탠스는 닉슨 재선위원회 재무담당 의장, 맥그루더는 재선위원회 부회장, 캄바치는 재선위원회 재무부의장, 홀드먼은 백악관 수석 보좌관이다.


2. 영화 속 제보자는 2005년 5월 31일 스스로 정체를 밝혔는데 FBI의 2인자였던 마크 펠트다. 우드워드는 1969년~1970년 사이 백악관에서 그와 처음 만났다고 밝혔다. 그는 펠트를 '흰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빗어넘긴 키가 큰 남자'로 묘사했다. 영화에서처럼 우드워드는 발코니에 화분을 놓고 펠트를 만났는데 나중에 그 아파트를 찾아간 한 작가에 따르면 그 아파트는 밖에서 발코니를 보기 힘든 구조로 되어 있어서 펠트가 어떻게 발코니에 놓인 화분을 보았는지는 미스터리라고 한다. 우드워드는 워터게이트 사건 이전에도 펠트와 통화한 내용을 기사로 쓴 적 있는데 모두 익명의 제보자로 처리해서 신뢰를 쌓았다. 그때 쓴 기사 중에는 민주당의 알라바마 주지사 조지 월레스 저격범 아서 브레머에 관한 기사도 있었다.


3. 워터게이트 사건은 제보자라는 뜻의 'Deep Throat'라는 단어가 처음 쓰인 사건으로 마크 펠트는 최초의 Deep Throat인 셈이다. 우드워드는 애초에 마크 펠트를 'My Friend'라고 썼다. (이니셜이 M.F.로 똑같다.) 이를 영화 제목에서 딴 Deep Throat로 명명한 사람은 워싱턴포스트의 편집인 하워드 시몬스다.


4. 워싱턴포스트의 편집회의에서 제이슨 로바즈가 연기한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는 2014년 10월 21일 사망했다. 워싱턴포스트가 권력 기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주 그레이엄 가문의 경영과 편집권 분리 원칙이 결정적이었다. 1877년 창간된 워싱턴포스트는 인터넷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경영이 악화되더니 결국 2013년 제프 베조스에게 팔렸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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