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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래된 줄 몰랐는데 옛날 사진을 뒤적이다보니 꼭 11년 만이네요. 2003년 부산을 찾았던 것이 제 기억 속 마지막 부산국제영화제였습니다. 그전까지는 거의 매년 가을만 되면 부산국제영화제를 보러 갔더랬죠. 2003년을 기점으로 뭔가가 맘에 들지 않았나봐요. 그동안 11년 동안 찾지 않았던 걸 보면요.


이번에 부산을 다시 가보니 11년 전과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비단 영화제 뿐만 아니라 도시 자체가 환골탈태했다고 느꼈습니다. 마치 상하이를 10년 만에 다시 가본 느낌이랄까요?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영화의 전당'이라는 부산국제영화제 전용 상영관이 들어선 '센텀시티'의 존재감이었습니다. 예전에 수영비행장이 있던 곳을 산업지구로 재개발해 조성했다는데 스카이라인이 마치 싱가포르에 온 듯합니다. 이 지역에는 센텀초등학교부터 센텀아파트까지 전부 '센텀'을 달고 사는 것을 보니 주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한가 봅니다.




지난 10년간 가장 상징적인 변화는 이름부터 시작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영어 약자가 예전엔 PIFF였는데 지금은 BIFF입니다. 2004년 국어의 영문표기법 개정 때 "PIFF를 상표로 등록해놓았고 외국에서 PIFF로 자리잡았기에 바꾸지 않겠다"는 당시 조직위의 발표가 있었는데 어느새 슬그머니 BIFF로 바뀌었군요.



두 번째 상징적인 변화는 메인 상영관 '영화의 전당' 건물입니다. 그동안 TV를 통해 개막식이 열리는 현장중계를 볼 땐 정말 웅장해 보였는데 직접 가보니 꽉 짜여진 느낌보다는 설렁설렁한 느낌이 더 강하네요.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긴 지붕은 가건물 같은 느낌도 있는데 낮보다 밤에 더 멋집니다.




개막식이 열린 현장인데요. 예전엔 해운대에 임시로 만든 야외극장에서 개막식이 열리곤 했는데 이젠 영화의 전당에 야외극장을 따로 설치했습니다. 다만 저 앞자리는 플라스틱 의자를 가져다 임시로 보조좌석을 만든 것에 불과해 성의없어 보이긴 하더군요. 개막작과 폐막작은 야외극장 상영이라 아무래도 주의집중을 요하는 영화는 배제되어야 하겠네요.




11년 전에 비해 부산국제영화제의 인지도는 엄청나게 높아졌습니다. 19년간 해마다 영화제가 성장을 거듭해오고 있습니다. 상영작의 규모 뿐만 아니라 부대시설이나 관광객을 위한 이벤트도 푸짐합니다. 영화제 기간에는 부산 전체가 영화의 도시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딜 가든 곳곳에 영화제를 알리는 현수막과 포스터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습니다.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부산의 이미지가 영화와 잘 맞아떨어지기도 합니다. 변화 속에서 콘텐츠를 발굴하는 것은 영화의 몫이겠죠.




해외 영화제를 몇 번 가본 적이 있는데 가장 부러웠던 것은 이렇게 한데 어울릴 공간이었거든요. 특히 유럽에서 열리는 유명한 영화제들엔 이런 공간이 꼭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산에도 BIFF 광장이 생겼습니다. 이곳에서 영화인들을 많이 만나보진 못했지만 운치 좋은 가을날을 즐기기엔 딱 좋은 장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건너편에 사는 아파트 주민이 문득 부러워지네요.




센텀시티의 화려한 야경 속에 놓인 부산국제영화제를 보고 있으니 "여기가 정말 부산국제영화제가 맞나"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그만큼 제 기억 속 부산국제영화제와 지금의 부산국제영화제는 전혀 다릅니다. 도대체 11년 전엔 어땠었냐고요? 한 번 보시죠.




그땐 대부분의 행사가 남포동에서 열렸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센텀시티에서 열리고 해운대와 남포동에선 메가박스만 참여하고 있죠. 그러나 그땐 남포동의 단관극장들이 주무대였어요. 부산극장, 국도극장, 제일극장 등등. 재개봉 극장이었던 대영극장이 새단장해 탄생한 대영시네마는 PIFF 광장의 한복판에 있어 영화제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2003년 즈음 해운대 메가박스가 상영관으로 처음 도입됐습니다. 이는 제가 그 이후 부산을 가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한데요. 서울에서도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를 보는데 굳이 부산까지 내려가서 멀티플렉스에 가고 싶진 않았던 거죠. 해운대 메가박스가 상영관으로 도입되고 나서 확실히 영화제의 흥겨움이 많이 반감됐거든요.




부산국제영화제 하면 남포동, 남포동 하면 PIFF 광장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센텀시티가 생기기 전의 일이죠. 밤이 되면 포장마차가 늘어서 해산물에 소주잔을 기울이던 곳도 여기죠. 영화인들이 술에 취해 포장마차 이곳저곳을 기웃거렸고 술자리는 밤새 이어지곤 했습니다. 지금 이곳에선 영화 그 자체보다는 부대행사가 더 많이 열립니다. 하지만 그래도 남포동은 여전히 정이 많이 가는 동네입니다.




영화제를 연결고리로 현재의 부산과 과거의 부산을 함께 보고 있으려니 시간의 흐름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그때도 부산은 참 역동적인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역동성은 변함이 없습니다. 계속 변화하고 있는 도시, 새로움을 받아들이려는 도시, 예전엔 미처 몰랐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한국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시 2014년 부산 센텀시티 영화의 전당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고 이유도 저마다 다양합니다. 영화를 보여주러 온 사람, 보러 온 사람, 판매하러 온 사람, 구입하러 온 사람, 제작 지원을 받기 위해 온 사람, 제작을 지원하기 위해 온 사람, 보도하러 온 사람, 연구하러 온 사람, 그냥 놀러온 사람 등. 저는 그중 영화를 보러 온 사람이었기에 열심히 영화를 봤습니다.




해운대 'BIFF 빌리지' 옆엔 남해 바다를 배경으로 영화인과 오픈토크를 하는 무대가 마련돼 있습니다. 내용이 새로웠다기보다는 이런 형식 자체가 영화제의 분위기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적당히 들뜨고 흥겨운 축제 말입니다. 11년 전의 부산국제영화제가 어떻게 놀 줄 모르는 자들이 놀아보려 애쓴 흔적이었다면 지금의 부산국제영화제는 판을 만들 줄 아는 자들이 정교하게 꾸며놓은 노련한 이벤트 같습니다. 왁자지껄한 '난장'은 사라지고 질서정연한 '감탄'만 남았습니다.


11년 만에 부산국제영화제를 다시 찾아 둘러보면서 그 규모가 예상 외로 커진 것에 놀랐고, 영화 상영에 대한 잡음이 거의 없을 만큼 매끄러운 운영에 놀랐으며, 부산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에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막식의 여배우 노출 경쟁과 <다이빙 벨>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 외에는 주류 언론에서 거의 보도하지 않는 현실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됩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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