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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가 범람하는 시대, 뉴스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의무감 비슷한 것으로 이 책을 샀다. 알랭 드 보통은 좋아하는 사람은 아주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가인데 공교롭게도 나는 후자다. 그래서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다지 끌리지 않았나 보다.


도입부는 좋았다. 저자는 헤겔을 인용하면서 현대 사회에서 뉴스가 과거 종교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고 말한다. "선진 경제에서 뉴스는 최소한 예전에 신앙이 누리던 것과 동등한 권력의 지위를 차지한다. 뉴스 타전은 교회의 시간 규범을 따른다. 아침기도는 아침 뉴스로, 저녁기도는 저녁 종합 뉴스로 바뀌어왔다." (P.11) 이런 문장은 솔깃했다. 뉴스가 종교를 대체하고 있다니. 과연 우리는 뉴스를 시간에 맞춰 정규적으로 소비하면서 과거 종교에 빠져 있던 사람들이 그랬듯 뉴스 체계에 매몰되어 있지는 않은가. 때마다 찾아오는 기도시간처럼 뉴스라는 신을 영접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이런 신선함은 잠시 뿐이었다. 세부 챕터로 들어가면 이런 신선함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책은 '뉴스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붙었으나 거의 수박 겉핥기식 논의에 그치고 있다. 책은 뉴스를 7개의 카테고리로 나눈다. 정치 뉴스, 해외 뉴스, 경제 뉴스, 셀러브러티 뉴스, 재난 뉴스, 소비자 정보 뉴스, 문화 뉴스. 각 뉴스들이 어떤 형식으로 만들어지고, 또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이를테면 정치 뉴스가 왜 저희들끼리 치고받는 분석에만 열중하는지를 이야기하다가 "그것이 사람들의 진을 빼놓아 정치적 무관심을 야기시키는데 목적이 있다"고 일갈한다. 또 "매우 합리적인 해결 방안들이 저 바깥에 어른거리는데도, 결코 우연은 아닐 텐데, 우리는 뉴스를 통해 이런 방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전혀 없다"고 말하며 끝맺는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 해결 방안에 대한 신선한 아이디어나 통찰력은 없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이런 식이다. "뉴스는 무엇보다 정신 건강, 건축, 여가, 가족 구조, 연애, 회사 경영 방식, 교과과정과 신분질서 등을 취재해야 한다. 이런 영역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의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보다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P.74) 자,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 정신 건강과 연애를 취재하라고? 어떤 연애를? 알고 싶은 사람은 개인적으로 알랭 드 보통에게 이메일을 보내면 답을 줄까?


마지막에 결론으로 제시하는 것 역시 똑부러지지 않는다. 구글식 맞춤형 뉴스에 대해 말하다가 그것도 결과적으로 마리 앙뜨와네뜨에게 꼭 봐야 할 사회뉴스를 스킵하고 그녀의 관심사인 소비자 정보 뉴스만 소비하게 하는 꼴이라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책을 덮고 나면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는지 알쏭달쏭해진다.


우리는 뉴스에 둘러싸여 있어서 정작 뉴스가 우리의 삶에 어떤 기능을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마치 매일 뜨고 지는 태양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각하기 쉽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뉴스는 우리가 궁금해하던 것을 채워주지만 궁금해하지 않던 것도 알게 해준다. 뉴스를 남들보다 빨리 접하면 많이 아는 것 같아 우쭐해진다. 그러나 뉴스는 한 인간을 헛똑똑이로 만들 뿐이다. "마음이 교활하고 상상력도 없는 현대의 얼간이가 얻어들은 것은 많아서 똑똑한 것처럼 보인다. 현대의 헛똑똑이는 과거에는 오직 천재들만이 알 수 있었던 것들을 일상적으로 알 수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얼간이다.(P.83)


저자는 이 책을 '아무 생각 없이 뉴스를 보는 이들'과 '뉴스를 멀리 하는 이들', '뉴스로 혼란스런 이들'을 위한 안내서라고 밝히고 있는데 그 말처럼 범람하는 뉴스와 거리를 두고 있지만 한 발짝 다가서고 싶은 이들에게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뉴스와 아주 친숙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매일 자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굳이 추천할 만한 책은 아니다. 다만, 아래 문장은 모두와 공유하고 싶다.


"어째서 언론은 어두움에 그렇게 과도하게 초점을 맞출까? 어째서 희망에는 거의 주목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뉴스의 어두운 현실주의자가 없을 경우 국가가 자신의 문제을 얼버무리고 어리석게도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위험한 경향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을 둔다. (중략) 국가는 쇠락을 피하는 길을, 망가진 관계를, 통제가 안 되는 십대를, 불안을, 물리적 취약성과 경제적 파멸을 보지 못한다. 이 지점에 뉴스의 임무가 있다. 사회가 저지른 최악의 실패를 우리에게 날마다 상기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자부심과 회복력과 희망을 갖출 수 있는 능력을 교육하고 지도하는 것 말이다. 국가의 쇠락은 감상적인 낙관주의 뿐만 아니라 미디어가 유도한 임상적 우울증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P.53~54)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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