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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어느덧 30대 후반이 되었습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나이만 먹었습니다. 10대엔 한 학기가 긴 터널처럼 느껴졌고, 20대엔 한 해마다 기록해둔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30대가 넘어서면서부터 시간이 점프한 것 같습니다. 나는 그대로인데 시간은 벌써 이만큼 와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갈까요?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물어보고 찾아봤습니다.



다행히 저만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들 이런 궁금증을 많이 갖고 있더군요. "나는 그대로인데 내 나이는... 음..." 이런 분위기였습니다. 사회가 고령화되고 1인가구가 늘어나고 과학기술이 발달하며 빨라지는 사회 흐름에 적응해가는 와중에 자신의 나이는 잊어버리고 살아가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이가 먹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이 시간의 흐름이 더 빨라졌다고 느끼는 것은 한 번 뿐인 인생이 허무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젊을 땐 젊음을 모르지만 나이가 들면 뒤늦게 그때 젊었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땐 시간의 고속도로에 올라탄 뒤입니다. 젊을 때 경험이 많고 이룩해놓은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나이를 더 빨리 먹습니다. 나이 들면서 모든 게 시시해진 탓이겠죠. 노인들의 경우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 직접적으로 와닿기 때문에 더 빨리 늙는다는 정신과 의사의 상담내용도 있었습니다.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이 나이가 들수록 더 빠르게 흐르는 까닭이 대체 무엇인지, 경험과 실험과 연구에 의해서 밝혀진 이유들 몇 가지를 정리해 봅니다.



1. 생체시계의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에는 리듬과 템포를 유지하는 생체시계가 있습니다. 이 생체시계는 나이가 들수록 속도가 느려져 행동이 둔해집니다. 행동이 둔해지면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데요. 절대적인 시간의 양은 똑같기 때문에 행동의 속도가 느려지면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피터 맹건 교수가 행한 실험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10대부터 60대까지 스톱워치를 주고는 눈감고 1분이 되었다고 생각되는 시점에 정지 버튼을 누르라고 한 것입니다. 결론은 나이가 든 사람일수록 더 긴 시간을 1분이라고 생각하고 정지버튼을 눌렀다고 합니다. 10대와 60대 간에 평균 약 5초 정도의 차이가 났다고 하는군요.


2.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아지기 때문이다


10살 어린이의 1년은 지금까지 살아온 10년 인생의 10분의 1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면 50세 어른의 1년은 50분의 1이죠. 상대적으로 더 짧습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겪어온 시간의 총량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더 시간이 짧다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3. 기억의 양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가장 흔하게 추론하는 설명인데요. 기억의 양이 곧 시간의 속도에 비례한다는 것입니다. 어릴 땐 모든 것이 첫 경험이기 때문에 기억의 양이 엄청납니다만 나이가 들면서 반복된 일상을 살다보면 뇌에서 처리해야 할 정보의 양이 줄어들게 됩니다. 정보의 양이 줄면 기억력이 감퇴합니다. 기억력이 감퇴하다 보면 지나간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학창시절 3년과 사회에서의 3년은 체감속도가 전혀 다릅니다. 새롭게 배워야 하는 정보의 양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떠나서도 우리는 이런 현상을 경험합니다. 낯선 길을 갈 땐 멀게 느껴지지만 돌아올 땐 가깝게 느껴집니다. 강렬한 자극은 기억 속에 경험을 훨씬 촘촘하게 기록하기 때문입니다.


4. 뇌의 정보 전달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뇌 안에서 시간에 대한 감각 정보를 하나로 통일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선조체의 신경회로입니다. 이 회로가 빠르게 진동하면 시간에 대한 기준이 빠르게 돌아가 상대적으로 바깥 세상의 모든 것이 느리게 느껴지는 반면, 느리게 진동하면 시간에 대한 기준이 느려져 상대적으로 바깥 세상이 빨라집니다. 진동이 빠른 어린이들은 세상을 슬로모션으로 보는 셈이고, 진동이 느린 노인들은 기억에 저장되는 영화필름의 프레임이 줄어드는 셈입니다.



5. 도파민 분비량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도파민은 선조체 신경회로의 진동수를 조절하는 물질로 새로운 자극을 받거나 즐거운 일을 경험해 기분이 좋아질 때 분비됩니다.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면 선조체 신경회로의 진동수, 즉 시간에 대한 내 안의 기준이 빨라져 바깥 세상이 느리게 느껴지고, 도파민이 적게 분비되면 진동수가 느려져 바깥 세상이 빠르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우리 뇌는 나이가 들면서 도파민의 분비량이 적어지고 도파민에 반응하는 능력도 감퇴합니다.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에 따르면 과학자들이 신경세포의 정보전달 속도를 높여주는 약을 개발 중이라고 하니 언젠가는 약물에 의해 시간을 벌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시간을 붙잡기 위해서는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무언가를 위해 도전해야 도파민 분비량을 늘릴 수 있습니다.


한편 필로폰 같은 마약에도 시간을 느리게 만드는 효능(?)이 있다고 하는군요. 영화에 보면 가끔 마약을 흡입한 인물의 정신상태가 슬로모션으로 표현되는 장면이 있는데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었습니다. 필로폰은 도파민 신경세포를 인위적으로 활성화해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반면 할로페리돌 같은 약물은 거꾸로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고 합니다.



6. 사회 속에서 불안감이 커지기 때문이다


세월의 속도가 30대는 30km, 40대는 40km, 50대는 50km로 간다는 말이 있죠. 우리가 심리적으로 세월의 흐름이 빠르다고 느끼는 것은, 개개인이 고립된 존재가 아닌 사회 속에서 온갖 고민 속에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고민은 더 깊어지고 무거워집니다. 학생 땐 가정 내에서 용돈 받아 쓰며 공부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 속에서 다양한 문제와 마주칩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 가정을 만들고, 직업을 선택하고, 돈을 벌고, 조직 내에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자아실현의 기회를 찾아 나섭니다.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다음 문제가 찾아오는데 그 문제들 사이에는 365일 비슷하게 돌아가는 일상이 있습니다. 그 속에 갇혀 있다 보면 시간이 쳇바퀴 돌듯 계속 돌아가는 걸 모르고 살아가게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루지 못한 것, 해야할 것들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이 커지는데 노화 과정에 의해 일 처리속도는 느려지고 인지기능은 자꾸만 떨어져 갑니다. 그와중에 사회는 점점 고도화돼 따라가기 벅찹니다. 이런 불안감이 시간에 대한 상대적인 압박을 크게 느끼도록 만듭니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고 한 번 뿐인 인생은 다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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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더 빨라진다고 느끼는 것을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위한 전문가들의 조언은 대개 비슷합니다. 새로운 자극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 도전하라는 것,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면 정보전달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 등입니다. 개인적으로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그날그날을 기록하라는 것입니다. 오늘이 어제와 아무리 비슷했다고 해도 어떻게 기록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기억할 수 있습니다. 다르게 기억하면 그 하루는 어제와 다른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 하루를 더 얻은 것입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댓글
  • 프로필사진 안혜림 1번 논문을 어디서 발췌해 오신건가요??
    다른 사람들이 보고 오해 하는 것을 막기위해 잘못된 점을 바로잡겠습니다. 생체시계는 나이가 들수록 느려지지 않으며 오히려 빨라집니다. 빨라지고 가속화 되어서 시간을 더 빠르게 흐른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2014.11.27 16:44
  • 프로필사진 Youchang 뉴욕 타임즈의 이 기사에서 참고했습니다.
    http://www.nytimes.com/1998/03/24/science/running-late-researchers-blame-aging-brain.html

    생체시계가 나이가 들수록 느려지는 게 아니라 빨라진다고요? 피터 맹건의 실험을 반박할 근거를 갖고 계시면 제시해주세요.
    2014.11.28 10:3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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