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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이라는 이름에 대해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느낌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는 사실 학창시절 강준만 교수가 쓴 '김대중 죽이기'라는 책을 통해 그분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 책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 그저 전라도를 대표하는 한 사람의 정치인이자
독재에 맞서 싸워온 민주투사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1924년생이니 한국 나이로 86세이다.
죽을 고비를 다섯 번 넘기고 불굴의 의지로 독재와 타협하지 않은 김대중.
IMF와 이인제라는 변수를 통해 결국 기적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되며
남북화해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
최근 이명박 정권에 대해 독재라고 비난을 하면서
끝까지 변치 않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었다.

최근 세브란스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그분을 떠올리며
그가 지금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의 직함은 현재 김대중 평화센터 이사장이다.
홍대 근처에 위치한 이곳은 그의 업적을 기리고 또 연구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인데
홈페이지에는 입원하기 이틀 전에 BBC TV와 인터뷰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김대중 평화센터 홈페이지 http://www.kdjpeace.com/main.asp)

전문을 읽어보니 언론에 보도된 대로 이명박 정권이 지난 10년간 북한에 퍼준 돈으로
북한이 핵무장했다고 한 발언에 대해 반박하고 비판하는 내용이 처음에 나오고
후반부에는 북한에 대한 그의 생각, 그리고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방법 등이 나와 있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을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전쟁이나 압박이 아니라 지키지 않을 수 없는 약속을 가지고
협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사실 약간은 실망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전쟁을 겪으신 분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산주의자를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이상한 사람입니다. 공산주의는 막스 이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말은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약속을 바꾸어도 된다는 말입니다.

김대중의 이 발언을 읽으면서 순간적으로 노무현이 떠올랐다.
일본의 공산당을 지칭하면서 한국에서도 공산당이 나와야
비로소 민주주의가 완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던 노무현.

아무래도 스스로 살아온 역사에서 경험한 유연함의 차이일 것이다.
어쩌면 세대가 다른 두 분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홈페이지에는 노벨상 수상 당시의 연설문도 전문이 공개되어 있었는데
군나르 베르게 위원장이 시인의 말을 인용하며 한 연설문도 감동적이었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수락연설문 역시 멋진 문장으로 되어 있었다.

베르게 위원장은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이 그의 햇볕정책 하나만으로 된 것은 아니고
그가 살아온 삶 자체가 민주주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인생이며
자신이 한국을 방문했던 1979년이래 스칸디나비아에서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면서
김대중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첫번째 떨어지는 물방울이 가장 용감하노라

한 시인의 시를 읊조리며 남북정상회담이 어떤 성과를 내기에는 아주 먼 미래이겠지만
"해보려고 애쓰는 시도가 없으면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는 원칙에 충실해
머나먼 길에 더욱 진척이 있기를 격려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했다.

김대중의 연설은 남북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해 설명하고
또 아시아에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에 대해
그동안 동양에서 인권이 존중받아온 역사에 대해 언급하면서
아시아에서 더 많은 나라들이 제도적 민주주의를 갖추기를 희망한다고 말하고 있다.

맹자는 '임금은 하늘의 아들이다. 하늘이 백성에게 선정을 펴도록 그 아들을 내려보낸 것이다. 그런데 만일 임금이 선정을 하지 않고 백성을 억압한다면 백성은 하늘을 대신해 들고일어나 임금을 쫓아낼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존 로크]가 그의 사회계약론에서 설파한 국민주권사상보다 2천년이나 앞선 것입니다.



연설문들 중 내가 가장 감명을 받은 부분은
노벨평화상 제정 100주년을 맞아 2001년에 열린 역대 수상자 초청 연설에서
김대중대통령이 발표한 내용이다.

이 연설문에서 그는 남북의 평화공존에 대해 세계인의 지지를 호소하면서
인류의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는 연설을 했는데
누가 이러한 연설을 또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대단한 연설문이었다.
많은 독서와 깊은 성찰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문장이다.

인류는 지금까지 다섯 번의 혁명을 겪었습니다. 첫째는 인간의 종의 탄생이요, 둘째는 1만년전 농업의 시작이요,셋째는 5∼6천년전 나일강,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인더스강 그리고 황하유역에서 일어난 4대 문명의 발상이요, 넷째는 2천 5백년전 무렵 중국, 인도, 그리스, 이스라엘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사상혁명이요, 다섯 번째는 18세기말에 영국에서 시작되었던 산업혁명입니다.


이어서 김대중은 산업혁명이 결국 민족주의를 낳았고 민족주의는 그 민족의 강함과 약함에 따라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어 1억 1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21세기 정보화 혁명은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국가와 국가 간에도 적용되어 빈부격차의 해결 없이는 21세기의 세계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 아니 세계의 어떤 대통령이 이러한 연설을 할 수 있을까?
김대중대통령을 가졌던 것은 한국인에게 커다란 행운이었다.

당시 김대중대통령이 외국 순방길에 오를 때 동행했던 기자들은
그 어떤 외국 정상보다 유럽에서 환대받는 그의 인기에 놀라고 뿌듯해했다고 한다.

그분의 쾌유를 빌면서 잠시 10년전 그가 청와대에 있던 시절을 떠올려본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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