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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면 아파트 문이 강제로 열린다. 집 안이 가스 냄새로 가득하다. 문틈은 테이프로 둘러쳐져 꽉 막혀 있고 그 안에는 한 노인이 침대 위에서 편안하게 잠들어 있다. 그녀의 얼굴 주위에 꽃잎이 흩어져 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송재호-김수미 부부가 떠오른다고? 그럴 수도 있다. 그만큼 이 영화의 소재나 줄거리는 그다지 특별한 게 아니다. 뇌졸중에 걸려 오른손과 몸이 마비가 되어 죽어가는 부인을 위한 남편의 헌신적인 사랑. 늙는다는 것, 그리고 죽어간다는 것. 남편은 그에게 닥쳐온 현실 속에서 실존적 고민을 한다. 그리고 걱정이 되어 찾아온 딸에게 말한다. "우리에게도 우리의 삶이 있다."


영화의 타이틀이 지나간 후 카메라는 피아노 콘서트장의 객석을 오랫동안 비춘다. 극장에 앉은 관객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스크린에 나타나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할 것이다. 마치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객석이 마주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라고 할까. 결국 이 영화는 객석에 앉은 조르주와 안느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들 생애의 마지막 외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노부부는 집의 자물쇠가 망가진 것을 발견한다. 도둑이 들었을까. 하지만 그날 제자의 훌륭한 피아노 연주를 감상한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던 부부는 범인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잠자리에 든다. 망가진 자물쇠는 영화의 중반부에서 누군가 벨을 누르고 조르주가 복도로 나가게 되는 단서가 되는데 사실상 그 장면이 유일하게 카메라가 집 밖으로 빠져나가는 순간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집 안에 머무르면서 안느가 죽어가는 과정을 집요하게 담아낸다. 때론 무의미할 정도로 친절하고 한편으론 질식할 정도로 답답하다.


조르주가 바깥 세상과 소통하는 것은 딸 에바, 제자인 피아니스트, 그리고 창문으로 들어온 비둘기를 통해서다. 특히 비둘기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메타포로 쓰였는데 마지막 장면 안느가 죽은 뒤 홀로 남은 조르주는 비둘기를 겨우 잡은 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그는 비둘기 때문에 곧바로 죽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남길 이야기가 늘었다. 바깥 세상과 소통하는 매개체인 비둘기가 조르주의 고독에 위안을 주는 자유로움의 상징이라고 한다면 너무 단순하게 느껴지지만 이 영화는 딱 그 정도의 단순함만을 허락하는 것 같다.


오프닝 타이틀에서 미카엘 하네케가 감독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아무르>가 그의 영화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미카엘 하네케의 전작과는 전혀 다르다. <퍼니게임>, <피아니스트>, <하얀 리본>의 끓어오르는 폭발력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감독의 새로운 도전이고 여전히 잘 만든 영화지만 전반적으로 밋밋해서 새로움을 느낄 수는 없었다.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지만 다른 더 좋은 작품이 없었는지 의문이 남는다. <남과 여>의 장 루이 트랭티낭과 <히로시마 내 사랑>의 엠마뉘엘 리바. 세월은 두 청춘 스타를 죽음을 앞둔 노년으로 만들어 놓았다. 미카엘 하네케가 여전히 장난을 치는 거라면 조르주와 안느 역으로 두 사람을 캐스팅했다는 점일 것이다. <남과 여> 커플이 노년이 된 모습 혹은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 일본인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던 프랑스 여배우의 마지막 모습을 영화팬의 추억 속에서 끄집어내 산산조각냈다고 할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긴 여운을 남긴다. 수미쌍관으로 첫 장면을 다시 불러올 줄 알았던 예상과 달리 마지막 장면은 두 사람의 환영이다. 설거지를 마친 안느는 외투를 입고 밖으로 나가려 한다. 조르주도 따라 나선다. 그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그들이 피아니스트로서 젊음을 보냈을 콘서트장으로? <피아니스트>의 여주인공 이자벨 위페르가 연기한 딸 에바가 빈 집에 홀로 남아 그들을 기다린다. 그리고 배경음악이 없이 조용하게 엔딩 크레딧이 오른다.



PS) 이 영화에 대한 평론 중 신형철님이 씨네21에 쓰신 리뷰가 가장 기억에 남는군요. 링크합니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72320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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