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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상은 항상 공정성 시비에 휘말렸다. 80년대로 돌아가보자. 그 당시엔 영화상을 받아야 외국영화 수입쿼터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 영화사마다 영화상을 받기 위한 로비가 횡행했고 그래서 대종상 수상작도 로비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명성을 주장할 수 없던 억압된 사회 분위기와 '방화'에 별 관심이 없던 대중 덕분(?)에 '그들만의 잔치'로 매해를 넘겼다.


곪았던 문제가 제대로 터진건 1996년에 개봉도 안한 <애니깽>이 <꽃잎>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제치고 뜬금없이 작품상을 수상했을 때였다. 당시에도 대종상은 지금처럼 한국영화 성장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당시에는 <영원한 제국>, <닥터봉>, <젊은 남자>, <구미호> 등의 영화가 등장하면서 한국영화가 '방화'라는 명칭을 버리고 본격적으로 비상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대종상 사태는 한국영화계에 어이없는 한방을 날렸다. 영화인들의 탄식이 이어졌고 대중들도 문제점을 자각했다. 가장 오래된 상이라고 자부하던 대종상의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뒤 대종상은 대종상영화제로 이름을 바꾸며 변화를 꾀했지만 사실상 별로 달라진건 없었다. 작품 선정 방식, 수상작 선정 과정이 투명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결과 2009년엔 실체를 알 수 없던 <하늘과 바다>가 작품상 후보에 올라 다시 한 번 도마에 올랐다. ('도마에 오르다'는 클리셰 안쓸려고 했는데.. 도마가 무슨 죄냐!)



올해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후보에 오른 모든 부분에서 수상하며 15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면서 또다시 논란의 한가운데에 섰다. "대종상이 <광해>의 안티로 나섰다"는 기사까지 나올 정도다. 게다가 <광해>의 제작/배급사는 한국영화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CJ엔터테인먼트라는 점에서 음모론까지 더해졌다. (<광해>는 사실상 올해 CJ의 유일한 흥행성공작이다.)


어느 해보다 한국영화가 양적, 질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2012년. <피에타> <건축학개론> <도둑들> <은교> <도가니> <부러진 화살>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다른나라에서> 등 후보작들 중에 훌륭한 영화가 많았다. 어떤 작품이 상을 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수작들이었다. 물론 한 영화가 수상을 독식하라는 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광해>가 그 정도로 압도적인 영화인지는 의문이다. 한국영화 최고의 한 해를 <광해>와 '그밖의 다른 영화들'로 나누어버린 대종상의 만행. 당장 SNS에 올라온 영화인들과 관객들의 반응도 비판 일색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영화상이라는 대종상은 이제 사실 영화인들조차 받기를 꺼름칙해하는 상이 됐다.


이처럼 대종상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도대체 왜 고쳐지지 않는 걸까. 지금껏 계속되어온 대종상의 땜질처방을 보고 있으면 답답하기도 하면서 이게 한국 문화의 현주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치권과 대기업에 손내밀려고만 하고 자생력을 키울 줄 모르는 한국의 문화산업. 각종 스포츠협회장을 정치인이 맡는 것처럼 대종상 집행위원장도 정치인이다.


예전에 공정성 심사를 위한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심사위원단에 일반인을 섞어 대종상 영화제를 만들고 그 기간 동안 인기투표를 하는 방식이었는데 사실 개인적으로 조금 어이없었다. 영화상을 인기투표로 준다면 그냥 흥행 잘된 영화에 상 주면 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전문가 심사위원들의 명단은 시상식에서 소개되지도 않는다. 결국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구조다.


올해는 심사위원끼리의 토의도 한번 없었다고 한다. 도대체 누가 주는지도 모르고 왜 주는지도 모른다. 이런 영화상이 무슨 의미가 있는건지 모르겠다. 올해 대종상 시상식 전에 "사단법인으로 독립하면서 공정성의 의지를 보였다"고 자화자찬하던데 그래봐야 그 사람이 그 사람인데 단체의 형식만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되나? 마치 예전 반공영화에 상 주던 시절의 레토릭을 보는 것 같다. 문제는 형식을 그럴듯하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운영의 실체적 투명성을 개선할 수 있느냐다.


대종상은 내년에 벌써 50살을 맞는다. 누구나 문제점을 이야기하지만 확 바꿀 생각은 하지 못하는 영화상. 그런데 몰라서 못바꾼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들 자기 밥그릇이 걸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계가 정치색에 따라 양분된지 오래인 탓도 있다. 그들 사이엔 대화가 없고 또 대화의 장을 만들 계기도 없다.


결국 대종상은 계륵이다. 역사와 상징성 때문에 없애기는 아깝고 그냥 두자니 문제고... '종쳤다' 혹시 이름이 문제인가?


>> 로맨스 빠빠부터 국제시장까지... 대종상, 종칠 때 됐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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