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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극장가에 노 전 대통령과의 추억을 공유하는 영화들이 속속 개봉하고 있다. 2016년 ‘무현, 두 도시 이야기’와 2017년 ‘노무현입니다’가 얻은 뜨거운 반응을 기대하며 올해는 ‘노무현과 바보들’ ‘물의 기억’ ‘시민 노무현’ 등 세 편이 선보인다.


그런데 이들 중 결이 다른 영화 한 편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이 화두지만 영화에는 노 전 대통령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대신 영화의 주인공은 두꺼비, 오리, 우렁이, 거미, 사마귀, 황새 등이다. 봉하마을 인근 들판, 화포천, 정토원, 개구리산, 뱀산, 노 전 대통령 묘역 등에 사는 이들은 영화 속에서 어딘가로 움직이거나 한가로이 물장구를 치거나 혹은 생사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어린 시절을 닮은 소년이 자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15일 개봉한 '물의 기억'의 러닝타임 100분은 이렇게 훌쩍 지나간다.



10년 전만해도 봉하마을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화포천은 오폐수와 쓰레기로 악취가 진동했다. 2008년 퇴임 후 봉하마을로 내려간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어릴 적 개구리 잡고 가재 잡으며 놀던 마을을 복원시켜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오리, 우렁이를 풀어 병충해와 잡초를 잡아먹게 하는 생명농법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는 그의 모습은 대중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진 제공=노무현재단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자연은 그로부터 10년 후 봉하마을의 속살이다. 화포천은 지역주민과 지자체의 노력으로 2017년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될 만큼 깨끗하게 탈바꿈했다. 영화는 카메라를 현미경처럼 구석구석 들이대고 경이로운 자연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영화 속에는 하천을 복원하는 과정도 없고 노 전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미화하는 영상도 없다. 그저 풍성해진 자연 속에 감춰진 생명의 신비를 보여줄 뿐이다. 자연 다큐라서 지루할 거라는 선입견을 비웃듯 손톱 만한 생명체들은 큰 스크린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각본 없는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영화를 만든 진재운 감독은 2012년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도요새를 추적하는 영화 ‘위대한 비행’으로 호평 받으며 데뷔한 자연 다큐멘터리 전문가다. 부산경남 민영방송국 KNN 소속 기자인 그는 ‘해파리의 침공’, ‘삼각주’, ‘샨샤댐’ 등 그동안 30편이 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왔다. ‘물의 기억’은 자연 다큐 전문가가 노무현을 만나 이루어낸 이질적인 결과물이다. 그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노 전 대통령을 회고한 영화기도 하다.


지난 10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에서 진 감독을 만나 ‘물의 기억’에 대한 기억을 물어봤다. 다음은 진 감독과의 일문일답이다.


사진 제공=롯데시네마 아르떼


Q ‘물의 기억’은 어떻게 시작한 프로젝트인가?


A 2017년 화포천이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고 나서 KNN에서 대담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 있다. 그때 출연했던 주식회사 봉하마을 김정호 대표(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가 방송 후 나에게 10년 간의 생명농법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당시 봉하마을 측은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포커스가 되어 있는 영화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정치적인 영화를 만들 의향은 없었다. 내가 잘 하는 장르는 자연 다큐니까 내 방식대로 만들고 싶었다. 봉하마을을 디테일한 시선으로 보면 지금까지 못 본 영상을 얻을 수 있다. 작은 것들을 웅장하게 구현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해보자고 생각했다.


사진 제공=롯데시네마 아르떼


Q 영화는 노무현 영상으로 시작하지만 이후엔 노 전 대통령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자연 다큐에 집중하기 위함인가?


A 정치영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찾은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등장은 하되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하고 싶었다. 바람처럼 실제로는 있는데 없는 듯한 느낌이길 바랐다. 자료 영상은 많았지만 거의 쓰지 않았다. 많은 장면을 중복적으로 쓰는 게 의미 없다고 봤다. 지금도 사실 원래 계획보다는 (노 전 대통령 영상이) 많이 들어간 것이다. 처음 나온 버전은 지금의 3분의 1 분량이었다. 그런데 주위 반응을 보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없다고 해서 조금 더 넣은 것이다.



Q 봉하마을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 기획의도였으니 지난 10년 간의 자연 복원 과정을 보여줄 수도 있었을텐데 그런 과정 역시 영화엔 없다.


A 복원 과정도 취재를 많이 했지만 그걸 영화에 넣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어 오히려 배가 산으로 가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겠다고 봤다. 지금 현재 생생하게 살아있는 자연의 모습을 전하는 게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관계자들 중엔 왜 안 실어주느냐는 불평도 있었다. 물론 복원 과정을 전달하는 것이 기록으로는 가치 있을지 몰라도 내가 집중하고 싶은 것은 생생하게 살아난 자연이라는 결과물이었다.


Q 중간중간 노 전 대통령의 어린 시절로 추정되는 소년이 등장한다. 다큐에 드라마를 혼합한 독특한 방식이다.


A 구성 단계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지금의 봉하마을은 노 전 대통령의 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작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변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소년을 등장시켰다.


사진 제공=롯데시네마 아르떼

사진 제공=롯데시네마 아르떼


Q 자연의 모습을 담는 과정에도 시나리오가 있었나? 아니면 영화 속 영상은 모두 우연의 결과물인가?


A 처음엔 시나리오가 있었다. 여기엔 어떤 곤충이 사니까 언제 가서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안 되더라. 계획한 곤충은 제대로 찍을 수가 없는데 그대신 전혀 다른 장면이 보였다. 그러면 거기 카메라가 간다. 그래서 처음 계획과 완전히 달라졌다. 영화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두꺼비는 아예 생각도 안 했는데 마침 노 전 대통령 묘역 인근에 두꺼비가 많이 살고 있었다. 인근 암자의 주지스님이 두꺼비 한 마리가 묘역에서 5년 동안이나 살고 있다고 하더라. 마침 촬영한 날에도 찍기 좋도록 묘역에서 자연스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Q 곤충의 태아부터 태양까지 다양한 스케일로 자연을 영상에 담았다. 촬영 과정은 어떻게 진행됐나?


A 촬영 스태프 5명이 16대의 카메라를 계속해서 돌렸다. 소니 알파 시리즈 6대를 기본으로 사용했고, 고프로와 액션캠, 드론을 활용했다. 장비가 소형화돼서 예전에 비하면 정말 찍기 좋아졌다. 물론 조류 촬영할 땐 예전처럼 ENG 카메라에 3000mm 망원렌즈를 써야 했다. 태양과 달의 표면을 정교하게 구현하기 위해 컴퓨터그래픽 작업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 영화 속 폭발하는 태양과 분화구 그림자까지 선명한 달의 모습은 6개월 동안 NASA의 자료 참고해가며 일일이 작업한 결과물이다.


사진 제공=롯데시네마 아르떼


Q 자연 다큐를 만드는 것은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일 듯하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A 2017년 말에 기획해 2018년 1년 내내 촬영했다. 사계절을 담았는데 그중 여름이 정말 힘들었다. 작년 여름 폭염이 사상 최악이지 않았나. 논에서 촬영하려면 직사광선을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데 서 있기도 못할 정도였다.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 싶어서 아예 낮에는 찍지 않기로 하고 새벽, 아침, 저녁에만 촬영했다. 다행히 마을 주민들이 많이 도와줘서 날씨 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사진 제공=롯데시네마 아르떼

사진 제공=롯데시네마 아르떼


Q 영화 속에 다양한 생명체가 나온다. 거미가 사마귀를 칭칭 감는 서스펜스도 있고 작은 곤충이 물방울에 튕겨져 나가는 코믹한 영상도 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은?


A 황새를 미꾸라지의 시선으로 본 장면이다. 고프로 배터리가 50분이면 수명을 다해 일단 설치해놓고 50분을 기다렸다. 그렇게 다섯 번을 했는데 운좋게 두 번 황새가 앵글에 걸렸다. 이 장면은 조류 촬영 전문가들도 깜짝 놀란다. 일본 전문가들이 찍고 싶다며 (봉하마을로) 찾아오기도 했다.


또 두꺼비가 반딧불이를 먹는 장면도 쉽지 않은 장면이었다. 반딧불이의 빛이 굉장히 약하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빛을 정말 아름답게 잡아줬다. 이 장면에 “어둠 속에서 빛을 낸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라는 내레이션을 넣었는데 이 문장은 노 전 대통령을 생각하며 쓴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본 사람 중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더라(웃음).


Q 영화에 노 전 대통령이 거의 등장하지 않으니까 내레이션이 나와도 그렇게까지 연결시키지 않게 되는 것 같다. 혹시 노 전 대통령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나?


A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동안 정치 역정을 보면서 다른 정치인과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 정도다. 그런데 이번 영화 촬영 도중 노 전 대통령 꿈을 세 번 꿨다. 꿈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신기한 것은 그 다음 날 묘역에서 두꺼비 장면을 찍었다는 것이다.


사진 제공=롯데시네마 아르떼


Q 뭔가 계시처럼 느껴졌겠다. 만약 노 전 대통령이 영화를 본다면 무슨 말을 할까?


A 어제 국회에서 시사회가 열려서 갔더니 김정호 의원이 그 이야기를 하더라. 노 전 대통령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거라고. “정말 고생했다. 고맙다.”


노 전 대통령이 한 말 중 하나를 영화 마지막에 썼는데 이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어록이다. “우리 봉하들녘 한 번 봐주세요. 숲도 한 번 봐주세요. 화포천도 한 번 봐주세요. 나중에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살아 계신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하지 않으셨을까.



Q 영화의 내레이션을 김명곤 세종문화회관 이사장이 맡았다.


A 전문 성우보다는 배우의 목소리를 쓰고 싶어서 배우 100명의 목소리 녹음본을 찾아서 들어봤다. 그중 김명곤 이사장 목소리가 제일 귀에 꽂혔다. 사실 이 영화는 영상, 내레이션, 음악이 모두 개성이 강해서 잘 맞지 않으면 거슬릴 수 있는데 완성본에 대한 관객 반응이 나쁘지 않아 다행이다.


사진 제공=롯데시네마 아르떼


Q 내레이션은 물을 강조한다. 모든 생명은 물에서 시작해 물로 끝난다고 말한다. 또 영화의 제목은 물에 기억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인가?


A 원래는 영화 제목을 ‘바람소리’로 하려고 했다. 바람이 생명이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불현듯 10년 전에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에모토 마사루가 쓴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 이런 내용이 있다. 물에 긍정적인 감정을 쏟아부으면 물의 결정이 예쁘게 나오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쏟으면 결정이 안 나온다. 물은 저장 장치처럼 기억을 한다. 생명을 품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의 이런 모습은 인간과 참 대비된다. 우리는 늘 후회와 두려움의 감옥에 갇혀 나아가는 것을 머뭇거리지 않나. 생활이든 정치든 경제든 모든 방면이 다 그렇다. 하지만 물은 전혀 거리낌이 없다. 남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다. 안개든 서리든 어떤 모습이든 나아갈 필요가 있을 땐 나아간다. 느리냐 빠르냐 속도만 다를 뿐이다. 한국 사회엔 갈등이 참 많은데 좌우 이념을 벗어날 수 있는 게 생명이고, 그 근원이 물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제공=롯데시네마 아르떼


Q 영화가 관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면 좋을까?


A 영화를 안 본 사람은 막연히 ‘노무현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렇게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엔 노무현을 어마어마하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또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런 프레임 역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감옥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은 정치를 끝낸 후엔 (생명농법을) 실천한 사상가였다. 선입견에 빠져 벽을 치지 말고 노무현으로부터 시작된 자연의 변화를 스며들듯이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그러면 많은 것들이 새롭게 보일 것이다.



*매일경제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http://premium.mk.co.kr/view.php?no=25593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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