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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이해하고 싶고, 나를 이해시키고 싶고, 알리고 싶고, 포옹받고 싶고, 누군가 와서 나를 데려가기를 바란다.” -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중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영화로 만든 클레어 드니 감독의 ‘렛 더 선샤인 인’은 이혼한 중년 여성 이사벨(줄리엣 비노쉬)의 이야기다. 그녀는 사랑을 갈구한다. 돈 많은 은행원, 우유부단한 연극배우, 이혼한 전 남편, 만날 때마다 자신의 별장에 초대하겠다는 남자, 고졸의 예술가, 갤러리 대표, 택시기사 등등 남자들은 끊임없이 그녀에게 다가오지만 그녀는 마음을 주었다가 실망하고 닫기를 반복한다.



“네가 상처받았다고 왜 나에게 상처를 줘?”


영화는 사랑의 본질은 고통이라고 말한다. 사랑에 빠질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신격화한다. 그 사람의 진실과는 상관없는 이미지를 만들어 그 이미지를 소유하려 한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 사람 역시 마찬가지로 나의 실제와는 상관없는 이미지를 만들어 관계를 쟁취하길 원한다.


바르트는 키케로의 말을 빌려와 이러한 욕망을 가우디움(gaudium)이라고 했다. 사랑이라는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면 소유욕을 버리고 마음이 즐거운 상태인 래티시아(letitia)에 머물러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은 불현듯 끓어오르는 가우디움을 포기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이의 마음은 불안정하다.



가우디움을 갈망하는 이사벨은 고통스럽다. 사랑하는 이에게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만큼 그도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나만을 바라보는, 전혀 의외의 다른 사람을 내가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사랑의 기표와 기의는 매번 불일치하고, 그때마다 사랑은 미끄러진다.



“내 안에서 빛나는 태양을 찾으세요. 마음을 여세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 점성술사(제라르 드파르디유)를 찾아간 이사벨이 그 남자가 다시 나타날지를 묻자 그가 이사벨에게 하는 충고다. 사랑이 고통이라면 벗어나기 위해 고통을 긍정하는 수밖에 없다. 클레어 드니 감독은 영화의 기획의도를 설명하면서 “고통이란 누군가가 사랑에 대한 문제로 앓고 있음을 설명하는 매우 멋지고 자신 있는 언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점성술사와 이사벨이 대화를 나누는 마지막 장면은 엔드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계속된다. 두 사람은 비슷한 문답을 계속 반복한다.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이고 그녀에게 어떤 존재인지 의미를 규정짓고 싶어하는 이사벨에게 점성술사는 맞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명확한 답을 준다. 이 마지막 장면은 사랑이라는 고통을 갈망하면서도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어 타인과의 관계에서 매번 끌려다니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을 줄 것이다.


“사랑은 눈을 멀게 한다는 속담은 거짓말이다. 사랑은 오히려 눈을 크게 뜨게 하며, 명석하게 만든다. 나는 당신에 대해, 당신에 관해 절대적인 앎을 갖고 있다.” -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중


렛 더 선샤인 인 ★★★☆

사랑의 본질은 고통. 내 안에서 빛나는 태양을 찾아라.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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