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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주식은 쳐다보지도 않던 가장 친한 친구가 오늘 비트코인을 샀습니다. 걱정되네요. 여러분 주변은 어떤가요?"


“하루종일 비트코인 시세 확인하느라 업무에 집중이 안 됩니다. 오늘 벌써 50만원 올랐어요. 이러다가 언제 확 빠질지 불안하네요.”


“주변에서 하도 말려서 600만원 할 때 안 산 게 후회됩니다. 이러다가 1억 되면 그때 또 후회하는 거 아닐까요?”


“비트코인 대란은 집단지성이 만들어낸 21세기 최대 행위예술 같네요.”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비트코인에 대한 네티즌들의 코멘트 중 일부다. 이들은 대부분 가격 급등락에 대한 불안과 값쌀 때 사지 못한 아쉬움과 팔짱 끼며 지켜보는 조소로 가득 차 있다.



올해 초 비트코인의 원화 가치는 100만원가량이었다. 지금은 1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3년 전 비트코인은 30만원 정도였고, 6년 전에는 고작 2천원이었다. 6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 가치는 무려 5500배가 오른 것이다. 액면가가 있는 주식과 달리 비트코인은 애초에 정해진 가격이 없다. 블록체인이라는 네트워크 참가자들의 믿음을 자산으로 하는 가상 통화이기 때문이다. 거의 0에서 시작해 1100만원까지 오른 비트코인은 그야말로 무(無)에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 셈이다.


비트코인은 정해진 총량이 있다. 총 2100만개다(전문가들은 비트코인 2100만개가 전부 발행되는 시점을 2150년으로 예상하고 있다). 채굴량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비트코인은 정부가 발행하고 보증하는 각국의 통화보다는 전통적인 실물 화폐인 ‘금’을 더 닮았다.



비트코인 채굴 작업을 위해서는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이는 기계로만 가능하다. 특히 반복 연산처리 능력이 좋은 그래픽카드가 CPU보다 채굴량이 많다. 전세계 그래픽카드가 동난 이유다. 비트코인 채굴에 사용되는 컴퓨터 전력량은 전세계 159개국의 연간 평균 전력 사용량을 상회할 정도로 많다. 그야말로 전 세계가 비트코인 채굴에 혈안이 되어 있다.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화폐는 가치 척도의 수단, 가치 저장의 수단, 교환의 매개 기능을 갖춰야 하는데 비트코인은 이 기능들을 제한적으로만 만족하고 있어서다. 표면적으로는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 합법화돼 일부 상점에서 교환 수단으로 사용되는 등 세 가지 기능을 갖춘 것처럼 보이지만 최근 시세가 급등락을 반복하다 보니 이 기능들은 사실상 제대로 발휘되고 있지 못하다. 비트코인을 쓰기 위해 사는 사람보다 시세차익을 노리고 보유하는 사람이 대다수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비트코인이 여전히 실제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거의 이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고, 블룸버그는 “향후 몇 개월은 (비트코인이 왜 필요한지) 투자자들의 결정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근거들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비트코인이 거래되는 시장의 열기는 뜨겁다. 한국에서도 저금리에 갈 곳 잃은 돈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의 지난 11월 12일 하루 거래액은 무려 5조6688억원으로 코스피 전체 거래대금인 약 6조원에 육박하고, 코스닥 전체 거래대금인 약 3조원보다는 훨씬 많았다. 실체가 없는 가상 화폐의 거래량이 실물 기업들의 시장인 코스피에 맞먹는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1989년 일본 자산 거품이 절정에 달했을 때 도쿄의 부동산 가치는 미국 전체 부동산 가격보다 높아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고, 20세기 말 닷컴버블 때 천정을 찍은 코스닥 지수(현재로 환산하면 2800)는 여전히 회복되기엔 너무 높은 곳에 있다. 2000년대 중후반 미국의 집값은 비우량 대출을 쪼개 담보로 잡아 또 돈을 빌려주는 무한 대출 시스템에 힘입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가 한순간에 추락했다.


비트코인이 과연 거품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는 과거 자산 거품이 발생하고 그것이 무너진 사례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튤립 버블을 풍자한 얀 브뤼겔의 작품.


배 한 척 값에 맞먹는 튤립 한 송이


인류 최초의 거품은 튤립으로 알려져 있다. 17세기초 네덜란드에서 튤립 한 송이의 가격은 3000길더까지 치솟았다. 당시 네덜란드 가정의 1년 생활비가 300길더였다는 것을 참조하면 튤립이 얼마나 고평가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튤립 한 송이와 배 한 척의 가격이 엇비슷했다. 가격이 급격하게 오른 한 달 동안 상승률은 무려 2600%에 달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된다. 도대체 튤립이 왜?



너무나 당연하게도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공급은 적은데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당시 튤립은 재배하기 힘든 귀한 꽃이자 부의 상징이었다. 희귀한 튤립을 보유한 사람은 부자로 인식됐다. 상업이 발달한 네덜란드에선 돈을 빌려주는 금융업이 태동하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튤립 거품은 더 심각해졌다. 예나 지금이나 투자에는 대출 권유가 잇따르고 뒤에서 돈을 챙기는 사채업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급등하던 튤립 가격은 이후 불과 4개월 만에 99% 폭락한다. 그야말로 튤립에 물 주기도 벅찰 정도로 순식간에 가치가 제로에 수렴해버린 것이다. 뒤늦게 높은 가격에 튤립을 사들이며 투기 대열에 동참했다가 가격 폭락에 좌절한 수많은 사람들이 망연자실했다. 튤립을 키우던 사람들은 일손을 놓았고 튤립은 땅에서 썩어갔다. 튤립 입장에선 몇 달만에 대우가 극과 극으로 달라진 셈이다.


윌리엄 호가스 作 '남해 거품 사건'


뉴턴마저 돈을 날리게 한 남해버블


그로부터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인 1720년엔 영국에서 거품이 발생한다. 1687년 윌리엄 핍스 선장이 에스파니아에서 보물선을 발견해 영국으로 돌아오자 국왕은 그에게 큰 상을 주었다. 아울러 핍스 선장을 후원한 귀족들에게도 배당금을 주었는데 이게 도화선이 됐다. 최고 배당금이 1만 퍼센트에 달하자 여기저기서 해저 보물을 인양하려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때 보물선을 인양하겠다며 대대적인 광고를 낸 회사가 있었으니 그 회사의 이름이 바로 ‘남해회사’다. 남해회사는 아프리카 노예를 스페인령 서인도 제도로 보내기 위해 1711년 영국에 설립된 국유 회사다. 재정 상황이 좋지 않던 영국은 공공 부채 정리를 위해 이 회사를 세웠다(‘로빈슨 크루소’의 저자 다니엘 디포가 회사 설립의 아이디어를 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스페인과 무역이 예상만큼 원활하지 않고 1718년 스페인과 전쟁이 발발하자 남해회사는 금융회사로 변신한다. 남해회사가 세운 계획은 이렇다. 주식을 국채로 교환해준다. 액면가 100파운드의 주가가 200파운드면 200파운드의 국채와 등가 교환한다. 이때 200파운드 만큼 주식을 추가 발행한다. 따라서 200파운드는 그대로 남해회사의 이익이 된다.


이런 방식으로 남해회사의 이익이 오르면 주가도 상승한다. 남해회사로서는 국채를 이용해 땅집고 헤엄치는 방식으로 무한 이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주가가 오르자 투자자들이 달려들었다. 귀족들 뿐만 아니라 이제 막 형성된 영국 중산층들도 목돈을 들고 남해회사 주식을 샀다. 사기만 하면 주가가 오르니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채를 인수하는 금융회사가 된 남해회사의 주가는 6개월 동안 10배 상승했다. 주당 가격은 1720년 1월 100파운드에서 6월 24일 최고치인 1050파운드로 치솟았다.



당시는 산업혁명 태동기였고 잉글랜드 은행이 막 설립된 초기였다. 은행이 돈을 보관해주고 또 불려줄 거라는 환상, 또 석탄 공급, 비누 제조 등 뭔가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장밋빛 전망이 영국 사회에 만연했고 남해회사 주식 폭등은 이러한 분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거품이 꺼진 계기는 정부의 규제였다. 남해회사와 비슷한 회사들이 무허가로 난립하는 상황에 이르자 정부는 거품 회사 규제법을 만들었고 이에 시장은 잠잠해지더니 급기야 주가가 폭락해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파산했고 일부는 자살까지 했다. 특히 소문을 듣고 뒤늦게 투자에 합류한 중산층의 피해가 컸다. 중력을 발견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 역시 남해회사에 투자해 2만 파운드를 잃고는 이런 말을 남겼다.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측정할 수 없다.”



뉴턴의 손실액을 현대의 화폐 단위로 환산하면 수십억원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뉴턴은 워낙 갑부였기 때문에 이 손실로 거리에 나앉을 정도로 심대한 타격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 남해 주식으로 돈을 번 유명인도 있다. ‘음악의 어머니’ 헨델은 이때 번 수익금으로 왕립 음악 아카데미를 설립했으니 거품을 현명하게 이용한 사례도 있기는 하다.


남해회사는 주가폭락으로 공중분해됐다. 정권이 몰락하고 왕실까지 위기에 처하자 재정 전문가 로버트 월폴이 사태 수습에 나섰다. 이듬해인 1721년 경제가 어느 정도 바닥을 다진 후 영국 의회는 책임 추궁을 위한 위원회를 설치하고 회계 감사 보고서를 발간했다. 남해버블 이후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사업에는 제3자에 의한 회계 감사가 필수적이 되었는데 이는 공인회계 제도 탄생의 효시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미시시피 버블을 풍자한 1720년 당시 삽화.


프랑스 대혁명을 촉발한 미시시피버블


영국에서 남해버블이 발생하고 있을 때 바다 건너 이웃나라 프랑스에서도 대형 거품이 발생한다. 미시시피버블이다.


발단은 ‘태양왕’ 루이 14세가 흥청망청 돈을 써 막대한 빚을 남기고 사망한 데서 비롯된다. 파산 위기에 몰린 프랑스를 섭정하던 필리프 2세는 네덜란드에서 첨단 금융기법을 배우고 돌아왔다는 이민자 출신 존 로가 제안한 통화 공급 아이디어를 덥썩 받아들인다.


로는 토지은행을 설립해 땅을 담보로 화폐를 발행하면 상업과 무역이 살아날 거라고 믿었다. 로의 제안에 따라 1716년 프랑스 최초의 은행인 '방크 제네랄'이 설립되고 경제가 부활하기 시작한다.


이에 힘을 얻은 로는 필리프 2세에게 또다른 제안을 한다. 아메리카의 루이지애나 식민지 개발권과 교역권을 독점 소유하는 '미시시피'라는 회사를 세우고 주식을 일반에 공모하자는 것이다. 주식 매각대금을 프랑스 국채로 받겠다는 로의 제안은 필리프 2세의 마음에 들었고 필리프 2세는 로의 계획을 승인한다.


이쯤 되면 남해회사와 미시시피회사가 꽤 비슷하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식민지에서 막대한 부가 나올 거라는 장밋빛 스토리가 많은 이들을 솔깃하게 했고, 이는 결국 은행 설립, 국채와 연동한다는 아이디어로까지 이어졌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일이 영국과 프랑스에서 동시에 발생한 것이다.


많은 프랑스인들이 미시시피회사의 주식을 사려고 몰려들었다. 돈이 있든 없든 일단 주식을 사야했다. 왜냐하면 물가가 그만큼 뛰어서 화폐 가치가 추락했기 때문이다. 4년 동안 통화량이 4배 늘었고, 빵과 우유 등 식량 값은 6배, 옷 값은 4배 올랐다. 1718년 300리브르에 불과하던 주식 가격은 1719년 2만 리브르까지 치솟았다. 이 와중에 존 로는 프랑스 재무총감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공급이 문제였다. 주가가 오르자 프랑스 정부는 주식 발행을 남발해 시장에는 불안 요인이 싹트고 있었다. 1720년 6월부터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다. 이후 미시시피회사 주식은 순식간에 수백 리브르까지 떨어졌다. 주가하락에 격분한 시민들이 들고 일어서자 로는 재무총감 자리에서 물러났다.


미시시피 거품 붕괴는 프랑스 재정을 거덜냈고 물가 불안에 시달리던 시민들은 곳곳에서 봉기했다. 정부는 세금 제도를 개혁하려 했지만 귀족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결국 갈등이 극심해지고 이는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진다.


미시시피 거품 붕괴 이후 프랑스에서는 아메리카의 ‘미시시피’가 쓸모없고 손해만 입히는 땅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그래서 프랑스는 1803년 (현재 미국 본토의 1/3에 해당하는 거대한 땅인) 루이지애나를 미국에 팔아버린다.


일본 도쿄 중심부 전경.


미국 땅 전체를 살 수 있던 도쿄 땅값


20세기 최악의 거품은 1980년대 중후반 일본의 자산 버블이다. 1991년 거품이 붕괴될 때 무려 1500조엔의 자산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주식과 부동산이 폭락하면서 소비 심리가 위축됐고 결국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10년’으로 통칭되는 급격한 후유증을 앓아야 했다.


일본 자산 버블의 발단은 1980년대초 오일쇼크 이후 일본 정부가 실시한 엔저 정책이었다. 통화량이 급증하고 일본의 수출 경쟁력이 급속하게 향상되자 시장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인위적 엔고가 형성되며 성장률이 떨어지자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리고 부동산 대출 규제를 급격히 풀었다. 이에 기업들은 싸게 대출받은 자금을 다시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했다. 돈이 돈을 받치는 형국이 되면서 주식과 부동산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았다. 이에 투자자들이 돈을 싸들고 몰려들면서 거품은 더욱 커져만 갔다.



1988년 일본 기업들의 위세는 대단했다. 시가총액 세계 50대 기업 중 무려 33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시가총액 1위 NTT의 시가총액은 2위 IBM의 3배가 넘었고, 당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보다 많았다. 심지어 일본의 GDP가 나머지 아시아 전체 국가의 GDP보다 컸다. 부동산 가격도 치솟아 도쿄 땅을 팔면 미국 땅 전체를 살 수 있을 정도였다. 당시 할리우드 영화들이 매번 일본인을 돈밖에 모르는 악한으로 그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89년 일본 정부가 금리를 인하하고 소비세를 신설하면서 거품 경제는 서서히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자산 가치가 폭락한 이후 일본 증시와 부동산은 여전히 그때의 가격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일본의 상황은 거품이 붕괴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많은 나라들이 반면교사로 참고하고 있다. 부동산 거품을 걱정하고 있는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1999년 미국 뉴욕의 나스닥 본부.


회사 이름에 닷컴이 들어가면 무조건 폭등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20세기 말에는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닷컴 버블이 발생한다. 미국의 나스닥, 한국의 코스닥, 독일의 노이어 마르크트 등에 상장된 IT 벤처기업들의 주가가 치솟았다가 한 순간에 폭락했다. 잠재력 큰 신흥기업 육성을 위해 출범한 세 증시는 거품이 꺼진 뒤 후유증을 크게 앓았고, 독일의 노이어 마르크트는 결국 2003년 시장 자체가 폐지되고 만다.


닷컴 버블의 기저에는 장밋빛 전망이 있다. 인터넷이 ‘오즈의 마법사’처럼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 줄 거라는 믿음이 눈먼 돈을 빨아들인 것이다. 수익은커녕 매출도 제대로 창출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들이 단지 가입자가 늘어나 전망이 밝다는 이유로 거액의 투자를 받았다. 대표적인 회사들이 코즈모닷컴, 부닷컴, 펫츠닷컴 등이다. 한국에서는 골드뱅크, 장미디어, 드림라인, 새롬기술 등이 초창기 대표적 인터넷 거품주였다. 회사 이름에 ‘닷컴’이 들어가거나 인터넷을 의미하는 뉘앙스가 묻어 있으면 별다른 호재 없이도 주가가 급등했다.



한국에서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김대중 정부가 전략적으로 벤처기업 육성책을 펴면서 코스닥 시장이 달아올랐다. 바이코리아펀드, 박현주 펀드 등이 애국심 마케팅을 펼치면서 부도난 한국의 미래는 오직 IT 산업에 있다는 믿음이 거품을 키웠다. 당시 골드뱅크와 드림라인의 PER(주가수익비율)는 무려 9999배에 달했다.



21세기가 시작되고 2000년 봄부터 사람들은 판타지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돈을 퍼붓던 사람들이 “그런데 수익은 어디서 창출하죠?”라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상상 속에선 이미 전세계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시대가 멀지 않아 보이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속도는 느렸고 이미지 하나 받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화상 통화나 동영상은 당시로서는 머나먼 미래에나 가능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2000년 하반기부터 IT 기업들의 주가가 출렁거리더니 몇 달 새 급격하게 추락했다. 2000년 말 대부분의 닷컴 기업들이 도산했다(이때 살아남은 기업들의 일부인 아마존, 구글 등은 지금 용이 되었다). 21세기는 그렇게 처절한 거품 붕괴로부터 시작됐다.


한때 284포인트까지 뛰어올랐던 코스닥 지수는 2000년 말 52포인트까지 추락했다. 지수가 너무 낮아지자 코스닥 시장은 2004년 지수에 10을 곱해 재출범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닷컴 거품이 한창일 때 코스닥은 현재의 코스피보다 더 높은 2840포인트까지 올랐던 것이다. 현재 코스닥 지수가 800 근처인데도 거품론이 나오는 것을 보면 당시 얼마나 큰 광풍이 불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2009년 금융위기 당시 매물로 나온 미국의 한 주택.


죽은 사람들에게까지 집담보 대출


가장 최근의 거품은 2000년 중반 미국의 부동산 가격 폭등이다. 부동산 버블은 닷컴 버블로부터 시작한다. 당시 닷컴 버블에서 빠져나온 돈들이 가장 안정적인 자산인 미국 국채에 몰리자 2001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금리를 내리면서 미국 국채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선언을 해버린다.


이 한 마디에 시장은 출렁거렸고 갈 곳 잃은 돈들이 저위험 고소득 투자처를 찾아 CDO(부채담보부증권)에 몰려들었다. 처음에 CDO는 프라임 등급을 가진 고객의 주택담보 대출이 다수였기 때문에 위험이 크지 않은 상품이었다.


거품의 형성과 그 몰락은 언제나 인간의 탐욕으로부터 비롯된다. CDO로 돈이 몰리자 2003년 투자은행들은 신용등급이 낮은 '서브프라임' 등급의 고객에게도 대출을 해주기 시작했고, 급기야 수입이 없는 고객들에게까지 집을 사라며 돈을 빌려줬다. 연준은 저금리를 유지하고 있었고 주택 가격은 계속 상승하고 있었으니 비록 고객의 수입이 없더라도 집값 상승분만큼 은행들은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은행들이 대출심사를 어찌나 대충했는지 심지어 죽은 사람이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2006년 미국 부동산시장 거품은 절정에 달했다. 자산 규모는 2조 달러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CDO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자 여기 투자한 수조 달러의 돈들이 허공으로 사라졌고 결국 2008년 9월 160년 역사의 미국 4대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를 비롯해 투자은행들이 하나둘 파산하며 전세계가 금융위기에 빠져들었다.



자산 거품 현상의 세 가지 공통점


지금까지 살펴본 자산 거품 사례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장밋빛 전망 가득한 스토리가 투자자들에게 밝은 미래가 올 거라는 맹목적인 믿음을 심어주었다는 것. 튤립은 부유층으로 신분상승하는 지름길이었고, 남해회사는 보물을 실어올 기세였으며, 미시시피회사는 식민지에 미래가 있다고 설파했고, 일본은 미국을 곧 추월할 거라고 믿었으며, 닷컴 기업들은 당장 네트워크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처럼 떠들어댔다.



둘째, 자산 가치가 이미 급등하고 있기 때문에 투자하지 않으면 나만 손해보는 것 같은 광기어린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것. 인간은 군집 동물이다. 소외되고 싶지 않다는 것은 진화를 통해 인간의 DNA에 박힌 속성이다. 거품은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이용한다. 주식이 오르고 집값이 오를 때는 사회가 전반적으로 흥분 상태가 된다. 미디어는 흥분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받아 쓴다. 그러면 흥분은 전염된다. 자산 가치가 오른다는 것은 반대로 돈값이 폭락한다는 뜻이니 돈을 들고만 있는 사람은 바보라고 부추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어느 순간 거품이 잔뜩 낀 주식의 막차를 타고 있다. 10대부터 70대 노인까지 투자에 동참했다는 뉴스가 뜰 때 우리는 그것이 제대로 된 투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모두가 이성을 차릴 때는 이미 늦었다. 거품은 인간의 광기를 먹으면서 큰다.


셋째, 거품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아이템을 찾는다는 것. 튤립, 보물선, 식민지 개척, 도쿄 부동산, 인터넷 기업, 서브프라임 CDO까지 거품의 대상은 늘 새롭다. 개별 인간은 어리석을지 모르나 인간 집단은 꽤 영리해서 ‘뉴페이스’가 아니면 잘 속아주지 않는다. 그러니 대형 버블일수록 그럴듯한 뉴페이스를 찾는 것이 관건이다. 공교롭게도 비트코인은 참신한 뉴페이스로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비트코인 버블은 과연 언제 터질까


앞서 살펴본 것처럼 거품은 장밋빛 전망과 함께 온다. 장밋빛 전망에는 항상 아름다운 미래가 있다. 그 미래는 판타지로 각색된 이야기 속에 존재한다. 비트코인이 갖춘 판타지는 이것이다.


“20세기말 인터넷이 세상을 바꿨듯이 10년 내 블록체인 세상이 올 것이다. 이때 국가가 발행하는 기존 통화는 힘을 잃을 것이고, 비트코인은 암호화폐 세상의 기축통화로 자리 잡을 것이다.”


스토리는 힘이 세다. 특히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언하는 형식의 스토리는 중독성마저 갖추고 있다. 여기에 이미 비트코인의 가격이 오르고 있는 현 상황은 많은 투자자들이 스토리를 믿게 만든다.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그럴 듯하다. 그리고 바로 이 무지와 그럴듯함 사이에서 거품이 발생한다.


비트코인의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는 저 스토리가 거짓이라고 예단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미래는 정말 비트코인이 기축통화로 자리 잡은 세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비트코인이 기축통화가 되는 것과 비트코인의 가치가 뛰는 것이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 지는 냉철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미국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가 된다고 해서 그 가치가 갑자기 상승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기축통화라면 그 가치가 안정적이어야 할 것이다. 커피 한 잔을 사는데 어제 필요한 돈과 오늘 필요한 돈이 다르다면 아무도 그 화폐를 오랫동안 들고 있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금 비트코인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가상화폐를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비트코인으로 저축이나 소비 등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기보다는 언젠가 팔아치워버려야겠다는 생각만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시장 참가자들의 생각이 일치하는 순간, 어느날 그들은 갑자기 원래 비트코인의 액면가는 0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너도나도 팔겠다고 아우성치면서 거품은 터져버릴 것이다. 지금까지 거품 붕괴의 역사는 대개 이런 경로를 밟아왔다.


비트코인의 가격은 어디까지 오를까? 여러 예측들이 있지만 그중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이는 가상화폐 거래소 비트멕스의 아서 헤이스 공동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비트코인이 내년 말 5만 달러(5400만원)까지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내리막도 가파르다는 사실이다. 거품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내리막이 가파르면 뒤늦게 뛰어든 투자자들의 피눈물이 시장에 흥건해질 것이다. 시장은 꼼꼼한 소비자보다는 물불 안가리는 투자자들의 눈가리개 쓴 믿음을 희생양 삼아 성장해왔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비트코인이 거품인 것을 당신은 이미 알고 있다고?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아직 비트코인 버블은 절정에 이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모두가 맥주를 마시며 거품에 취해있을 때, 광기를 통제하려는 시도가 무용지물일 때, 그때 비로소 거품은 터질 테니 말이다.



“빛에 홀린 이성은 태양을 향해 눈을 뜨고는 아무 것도 보지 않는다. 즉, 그것은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빛의 홀림에서 대상들이 어둠으로 모조리 퇴각하는 것에, 시력 자체의 추측이 상응하기 때문이다. 대상들이 빛의 비밀스러운 어둠으로 사라지는 바로 그 순간에, 시력은 스스로를 본다. 그 사라짐의 순간에.” - 미셸 푸코, [광기의 역사] 중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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