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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만들고 싶던 청년, 27년차 배우가 되다


친구를 만들고 싶은 키 작은 청년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그는 19세에 배 타는 일을 했다. 험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날 그는 고민을 나눌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산 거리를 걷던 그는 가막골 소극장이라는 간판을 보고는 무작정 안으로 들어갔다. 연극하는 곳이니까 또래 친구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극장 안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배우 한 명이 위에서 출혈이 생겨 공연을 못하게 됐다. 마침 연출자 이윤택의 눈에 띈 그는 땜빵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연기 인생의 첫 발을 내딛은 계기치고는 참 얼떨결이었다. 그는 이것을 운명이라고 여긴다.


그렇게 27년이 흘렀다. 그에게는 수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오달수, 김상호, 정만식 등 영화계에서 맹활약하는 배우들이다. 그리고 그 역시 한국영화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조연배우가 되었다. 그의 이름은 박수영. 사람들은 그를 <완득이>의 완득이 아버지, <덕혜옹주>의 영친왕 등으로 기억한다. 지난 17일 충무로의 베이커리24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Youchang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극단에 들어갔다. 그 전에 연기를 배운 적 있나?

"전혀 없다. 워낙 수줍음이 많아서 학교 다닐 때 나는 얼굴이 잘 빨개지는 아이였다. 그때 동창들은 네가 이거할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무대에 서기 전까지는 내가 할 수 있을 줄 전혀 몰랐다. 그런데 무대에 섰더니 희한하게 어색하지 않더라. 실제로 해보면 다르다는 걸 그때 알았다."


- 극단에서 배우 오달수를 만났다.

"거기서 일하고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두 살 위 선배다. 그런데 엄격하지 않아서 금세 친해져 둘이 매일 술 먹었다. 극단 퇴근하고 기다려지는 건 형이랑 술 마시는 거였다. 부산 여기저기서 많이 먹었다. 영도 다리 아래 포장마차에서 먹고, 태종대에서도 먹고... 20대 초반에는 그렇게 극단에서 먹고 자면서 아무 생각없이 살았다."



- 알바의 달인이라고 하더라.

"20대 중반이 되면서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유소, 서빙에 비디오방 알바도 했다. 작은 분식집을 해본 적도 있다. 밤 11시부터 아침 8시까지 일하고, 자고 일어나서 연기 연습하고, 공연하고, 다시 일하는 생활이었다. 그렇게 20대가 지나갔다."


- 그 시절 기억에 남는 작품은?

"이윤택 선생님의 '오구'다. 달수형이 문상객 역할, 나는 막내 저승사자 역할이었다."


©Youchang


- 20대를 극단에서 보내면서 이 길이 평생 내 길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나?

"확신이라기보다는 재미가 있어서 했다. 연극이 힘들지만 관객이 공연을 재미있게 봐주면 피로가 다 풀린다. 그런데 29세에서 30세가 될 때 정신이 번쩍 들더라. 주위를 둘러보니 연극 선배들이 50, 60대가 되어도 계속 어렵고 안 좋고 그런 상황들 보니까 나도 저렇게 되지 말란 법이 없겠다 싶었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눈앞이 캄캄했다. 노숙자가 될 수도 있고, 앞날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 자살 시도한 적도 있나?

"행동은 없었다. 계속해서 생각만 했다. 너무 괴로웠으니까."



- 어떻게 극복했나?

"참 우연찮게도 작품을 통해 극복했다. 당시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출격'이라는 한일합작 연극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때 일본 연출자가 우리나라에 와서 나를 캐스팅했다. 일본에서 두 달 연습하고 공연했는데 우물 안 개구리가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나니 자신감이 생기더라. 연극배우로 인정받은 느낌이랄까."


- 영화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첫 작품은 <박하사탕>이었다. 공장 인부 역할로 풀샷에만 잠깐 나온다. 그 다음이 <말죽거리 잔혹사>다."


<완득이>


- 2011년 <완득이>로 존재감을 알렸다.

"완득이 아빠를 연기한 이후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내 배우 인생에서 분기점이 되어준 작품이다. 처음 제작사 대표가 배역 제안을 했을 때 나는 다른 연극을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거절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제작사는 계속 배우를 못 구하고 있더라. 완득이 아버지만의 특수성이 있어서 배우 구하기 힘들다고 했다. 결국 제작사가 연극팀과 스케줄 조율을 해줬다. 덕분에 연극과 영화 모두 출연할 수 있었다."


- <완득이>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

"몇 백만원 빚이 있었는데 영화의 인기 덕분에 빚을 다 갚았다. 그래서 나에게는 '만득이'다. (웃음) 목돈이 들어오다 보니까 여기저기 고마운 분들에게 술도 샀다."


- 지금까지 한 연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배역은 뭔가?

"<덕혜옹주>의 영친왕이다. 허진호 감독님 팬이어서 아무 역할이나 시켜달라고 했는데 (영친왕과) 사진 속 모습이 닮았다며 웃으시더라. 영친왕 연기를 준비하면서 나름대로 자료조사도 해봤다. 친일파로 알려져 있지만 내 생각에는 그분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말이 왕이지 일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하다못해 자기 신하보다 권력이 없는 왕이었으니 얼마나 무기력했을까. 나 하나 때문에 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하나 이런 심정을 표현하는 게 마음 아팠다."


<덕혜옹주>


- 배우 박수영에게 느껴지는 이미지는 조금 억울해보이는 착한 소시민이다. 만족하나?

"사실 나도 내 자신을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보시는 분들이 그 이미지로 나를 불러주시긴 한다. 아,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한 번은 이준익 감독님이 <소원>에서 어린이 성폭행범 조두순 역할로 나를 캐스팅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못하겠더라. 아이에게 직접적인 가해 장면은 없고 단지 우산 씌워주는 장면밖에 없는데도 나는 그것도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장면이 없더라도 연기를 하려면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완곡하게 거절했다."


- 악역을 해본 적이 전혀 없나?

"있다. <변호인>에서도 안기부 직원이었고,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도 나쁜 선생이었다. 악역도 가리지는 않는다."


- 어린이 유괴범만 아니면?

"그렇다. (웃음)"



- 어떤 배우로 남고 싶은가?

"지나가다가 누군가 나를 보면서 "어, 그때 어디 살지 않았어요. 보긴 본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동네 사람 같은 배우면 좋겠다. 나는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연기가 매우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냥 평범하게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우다. 나는 지금 여기까지 온 것에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한다. 진짜 운이 좋았다. 시나리오만 좋으면 나는 어떤 작품이든 비중 안 가리고 출연하려 한다."


-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일까?

"내가 출연한 영화 중엔 <덕혜옹주> <카트>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등이 좋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거나 인간에 대한 깊은 탐구가 있는 작품을 선호한다."


©Youchang


박수영 (47)

출연작: 7호실, 덕혜옹주, 오빠생각,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 우아한 거짓말, 카트, 타짜: 신의 손, 건축학개론, 완득이, 이태원 살인사건, 영화는 영화다, 전우치, 말죽거리 잔혹사, 박하사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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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
영화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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