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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누군가는 꿈을 꾸고, 누군가는 그 꿈을 이루고, 또 누군가는 계속해서 꿈을 향해 도전하며 살아가는 곳. 거리에선 스텝 맞는 사람들이 춤을 추고, 카페마다 피아노가 울려 퍼지고, 하늘은 보라색으로 물드는 곳. 최근 라라랜드의 매력에 푹 빠져 찾아오시는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련했습니다. 라라랜드 입국에 앞서 꼭 알아둬야 할 사항들입니다.



1. 라라랜더들에게 춤과 노래는 필수


라라랜더들은 언제 어디서나 춤추고 노래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 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습니다만 적어도 소극적이어선 안 됩니다.



집에서, 거리에서, 카페에서, 수영장에서는 물론 심지어 고속도로에서도 춤을 추는 이들이 바로 라라랜더들입니다. 로스앤젤레스의 고속도로는 차가 막히기로 유명합니다만 그렇다고 인상만 쓰고 있어선 안 됩니다. 이때도 음악이 나오면 차에서 내려 춤을 춰야 하니까요.



본네트 위에 올라 하늘을 향해 팔을 뻗고 노래를 함께 부르면 잔뜩 찡그렸던 인상도 펴질 겁니다. 트럭 뒤에선 드러머들이 신나게 드럼을 치고 있습니다. 아, ‘위플래쉬’(2014)에서 드럼은 지겹게 봤다고요? 그래도 고속도로에서 울려 퍼지는 드럼 소리는 전혀 다르니까 그 순간을 즐기세요.


춤과 노래가 끝나면 재빨리 차 안으로 돌아가세요. 언제까지 춤추고 노래만 할 수는 없잖아요. 끼어드는 차 때문에 다시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고 가운데 손가락을 함부로 들어선 안 되지만 혹시 또 아나요? 덕분에 운명적인 사랑을 찾게 될지요.



2. 라라랜드에선 고전 영화를 숭배하라


뮤지컬 영화는 유성영화와 더불어 탄생했습니다. 물론 무성영화 중에도 뮤지컬이 있습니다만 극장 스피커로 음악을 덧입혔을 뿐이어서 한계가 있었죠. 최초의 장편 유성영화인 '재즈싱어'(1927)의 장르가 바로 뮤지컬입니다. 그만큼 영화라고 하면 춤추고 노래하는 매체라는 인식이 당시에 뿌리 깊게 박혀 있었습니다.


1920년대 중반 미국 경제가 거품에 취해 있던 시기, 사람들은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 꿈같은 가상현실에 열광했고 뮤지컬 영화는 점점 규모가 커져갔어요. 지금이야 블록버스터라고 하면 SF가 대세를 이루지만 과거엔 최대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 영화 하면 대부분 뮤지컬이었어요.


'사랑은 비를 타고'

'쉘부르의 우산'


'탑 햇'(1935) ‘스윙 타임’(1936) ‘세인트루이스에서 만나요’(1944) '파리의 미국인'(1951) '사랑은 비를 타고'(1952) '밴드 웨건'(1953) 등 1930~1950년대 뮤지컬 영화는 프레드 아스테어, 진저 로저스, 앤 밀러, 진 켈리 같은 스타 배우들과 빈센트 미넬리, 스탠리 도넌, 자크 드미 같은 스타 감독들을 탄생시키며 인기를 얻었지요.


이후 1960년대 들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마이 페어 레이디’ ‘메리 포핀스’ ‘사운드 오브 뮤직’ 같은 범접하기 힘든 대작들을 연달아 내놓으며 정점을 찍습니다. 1970년대 들어서는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영향으로 영화 속 리얼리즘이 평가 척도가 되면서 점점 쇠퇴하죠.


지금 뮤지컬 하면 브로드웨이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죠? 하지만 라라랜더들은 옛 뮤지컬 스타들을 경배합니다. 어떻게 경배하냐고요?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미아(엠마 스톤)의 행동을 살펴볼게요.


'스윙 타임'의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


미아는 친구들과 함께 방 안에서 춤추며 파티에 입고 갈 옷을 고르는데 이 장면은 '스윙 타임'(1936)을 따라한 거예요. 세바스찬과 미아가 벤치에서 탭 댄스를 추는 모습은 '밴드 웨건'(1953)과 비슷하고요. 미아가 빨간색 드레스를 입고 거리에서 노래하는 장면은 영락없는 '쉘부르의 우산'(1964)이죠.


비단 뮤지컬 영화뿐만이 아니에요. 두 사람이 서 있는 벽에는 찰리 채플린, 잉그리드 버그만 등 당대 스타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또 두 사람이 로맨틱하게 만나는 장소인 그리피스 천문대는 '이유없는 반항'(1955)의 상징 같은 곳이죠. 마침 두 사람은 '리알토'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있네요. 이때 극장에 뒤늦게 들어온 미아가 맨 앞으로 가서 사람들을 돌아보며 세바스찬을 찾는데요. 이 모습은 '카사블랑카'(1942)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이 험프리 보가트를 찾는 장면과 판박이에요.


'이유없는 반항'의 그리피스 천문대


3. 라라랜드에선 진짜 재즈를 들어라


존 레전드를 좋아하시나요? 레슬러 겸 록커인 조니 레전드 말고 R&B 스타 존 레전드요. 영화 '셀마'(2014)의 주제곡도 이 분이 만들었어요. 팬이시라고요? 그런데요. 너무 좋아하면 라라랜더가 될 수 없어요.


라라랜드의 음악적 취향은 엄격합니다. '위플래쉬'에서 음표 하나까지 정확한 재즈를 연주하라고 했던 대머리 플레처 선생님(J. K. 시몬스) 기억하시죠?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재즈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라라랜드에 입국할 수 있어요. 존 레전드처럼 재즈에 이상한 음악 짜깁기해 퓨전을 만들면 듣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라라랜더 스타일은 아닌 거죠. 참, 존 레전드는 세바스찬의 옛 친구 키이스 역으로 특별출연합니다.


키이스 역의 존 레전드


"재즈는 꿈이에요. 충돌하고, 화해하고... 정말 흥분되지 않아요?"


세바스찬은 이런 남자에요. 재즈를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마일스 데이비스가 오줌 싼 카페트라면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살 호구지요. 재즈클럽에서도 매니저 빌(J. K. 시몬스 깜짝 출연)이 크리스마스 캐롤이나 연주하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너무도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다가 해고됩니다. 하지만 덕분에 미아를 만나 사랑을 얻었으니 역시 음악의 힘은 놀랍기만 하네요.


물론 재즈를 몰라도 라라랜더가 될 수 있어요. 미아도 재즈를 전혀 몰랐거든요. 하지만 나중엔 누구보다 열정적인 재즈 옹호자가 되죠. 들으면 들을수록 흠뻑 빠져들게 되는 음악이 바로 재즈입니다. 그러니 너무 겁먹지는 마세요.


참, 라라랜드에 울려퍼지는 거의 모든 음악은 '위플래쉬'의 작곡가 저스틴 허위츠가 만들었답니다. 그는 다미엔 차젤레 감독과 하버드대 동창 사이로 이번에도 찰떡궁합을 선보였어요. 음악이 너무 좋아서 언젠가 '라라랜드'가 브로드웨이 뮤지컬로도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4. 라라랜드엔 열정만 갖고 오세요


미아는 워너브라더스 세트장 옆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스타의 꿈을 키우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머피의 법칙처럼 오디션 날마다 꼭 일이 생겨요. 우는 연기를 하고 있으면 뒤에서 누가 노크를 하고, 심각하게 감정을 잡고 있을 땐 심사위원의 전화벨이 울리네요. 10대 날라리 배역을 맡아 눈빛으로 기선제압을 하려는데 감독이 보지도 않고 그만 하래요. 그렇게 그녀에게 배우의 꿈은 자꾸만 멀어져 갑니다. 100번 이상의 오디션을 봤지만 영화사로부터 전화 한 통 오지 않아요.


"당신의 이야기를 써봐요.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위한 배역을 직접 만들어요."


세바스찬이 미아에게 하는 조언이에요. 그래서 미아는 대본을 쓰기 시작합니다. 남이 만들어 놓은 배역에 자신이 맞지 않는다면 스스로 나만을 위한 배역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요. 미아는 1인극을 쓰고 아르바이트로 마련한 돈으로 무대를 빌려 혼자만의 연극을 올립니다.



무모하다고요? 무명 배우가 혼자 쓴 연극으로 1인 공연을 하는 것이 성공 가능성이 있기나 하냐고요?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 같네요. 이해합니다. 아무리 공상이 현실이 된다는 라라랜드라지만 이런 시도는 정말 유성우가 우리 집 베란다에 떨어질 확률만큼이나 가능성이 작죠.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이렇게라도 자기가 가진 꿈을 시도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일 아닐까요? 라라랜드는 열정의 힘을 믿는 곳입니다. 열정과 긍정이 작은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곳입니다. 미아의 열정이 어떻게 보답 받는지는 영화에서 확인해주세요.



지금까지 라라랜드에서 필요한 네 가지 사항을 알려드렸습니다. 라라랜드를 살짝 엿본 소감이 어떠신가요? 사람들은 라라랜드가 비현실적인 곳이라고 말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아시겠죠? 비현실과 현실은 ‘비’ 한 글자 차이일 뿐이라서 비현실도 언제든 현실이 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당부드릴 말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라랜드는 결코 모든 꿈이 이루어지는 곳은 아니라는 거예요. 당신에게 예술을 향한 열정과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면 언젠가 당신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웃으세요. 그녀 혹은 그가 떠나갈지라도 말이죠.


지금까지 당신의 꿈을 응원하는 곳, 라라랜드 입국 심사대에서 알려드렸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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