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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내게 무슨 마법을 부린 걸까. 일주일째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자다가도 음악 소리에 눈을 뜨고 주말엔 광화문에 가득찬 촛불들이 하늘에 뜬 별들처럼 보였다. 해지기 전 노을은 보라색이 아니면 시시해졌고 무엇보다 배경이 된 이 도시, 로스앤젤레스에 가고 싶어졌다. 영화 보는 내내 꿈 꾸는 듯했던 '라라랜드', 이 영화가 선보인 세 개의 마법을 살펴보자.
마법 1. 뮤지컬 전성기 시대로 Go!
영화는 2.55대 1의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알리는 오프닝으로 시작한다. 2.55대 1은 극단적으로 가로가 긴 화면으로 '왕과 나'(1956), '회전목마'(1955) 등 대형 뮤지컬 영화에서 사용했던 포맷이다.
첫 장면의 배경은 꽉 막힌 고속도로.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미아(엠마 스톤)가 우연히 마주치게 될 이곳에서 갑자기 차에서 사람들이 내리더니 군무를 추기 시작한다. 원 테이크로 촬영된 이 장면은 넓은 스크린의 구석까지 꼼꼼하게 춤추는 사람들로 채우며 왜 시네마스코프를 택했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카메라 움직임이 적어 현란한 느낌이 덜한 대신 넓직한 화면은 탁 트인 경관을 보듯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영화의 도입부로서 이 장면은 관객에게 이렇게 선언하는 듯하다.
지금부터 1950~60년대 뮤지컬의 시대로 돌아갈 겁니다. 프레드 아스테어, 진저 로저스, 앤 밀러, 진 켈리의 시대로요. '파리의 미국인' '사랑은 비를 타고' '탑 햇' '밴드 웨건' '로슈포르의 숙녀들' 등이 유행했던 뮤지컬 황금기로요. 거리에서 감정을 노래하고 신나게 탭 댄스를 추고 스텝 맞는 낯선 이와 사랑에 빠지던 시대로요. 준비 되셨나요?
미아가 친구들과 함께 방 안에서 춤추며 파티에 입고 갈 옷을 고를 땐 '스윙 타임'(1936), 세바스찬과 미아가 벤치에서 탭 댄스를 출 땐 '밴드 웨건'(1953), 미아가 빨간색 드레스를 입고 거리에서 노래할 땐 '쉘부르의 우산'(1964) 등 고전 뮤지컬 영화가 떠오른다. 천문대에서의 로맨스는 '이유없는 반항'(1955), 미아가 극장에서 세바스찬을 찾는 장면은 '카사블랑카'(1942)와 닮았다. 또 곳곳에 옛날 스타일의 영화 포스터가 전시돼 있고 벽에는 찰리 채플린, 잉그리드 버그만 등 스타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노래로 대사를 전달하는 뮤지컬이 예전 만큼 사랑받지 못하고 고전 영화가 쉽게 잊히는 시대, '라라랜드'는 감독이 짝사랑하는 그 시절 작품들을 한데 모아 만든 팬픽 같은 영화다.
마법 2. '위플래쉬' 재즈의 업그레이드
작년 '위플래쉬'로 신인상을 휩쓴 다미엔 차젤레 감독은 사실 '라라랜드'를 먼저 만들고 싶어했다. 하지만 경력없는 신인에게 큰 돈을 쓸 제작자는 없어 영화사마다 거절당했다. 이후 '위플래쉬'로 실력을 보여준 뒤 그의 꿈은 이루어진다.
다미엔 차젤레 감독
음악에 미친 남자 둘이 투쟁하듯 드럼을 치고 채찍을 휘두르는 작은 영화 '위플래쉬'는 로맨틱한 영화는 아니었다. 예술은 미친 열정과 그로 인해 파열되는 인간성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것이라는 메시지에 집중하는 지독히 현실적인 영화였다.
감독은 이번엔 같은 메시지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한다. '위플래쉬'에서 투쟁의 도구였던 재즈는 '라라랜드'에선 사랑의 밀어가 되어 감미롭게 흐른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남녀는 각자의 성공을 향한 여정이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음악으로 서로를 위로한다. 시간이 지난 후 그들은 당시의 꿈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지를 묻는데 이때 역시 음악이 언어가 된다.
"재즈는 꿈이에요. 충돌하고, 화해하고... 정말 흥분되지 않아요?"
재즈가 인생인 남자 세바스찬이 미아에게 하는 말이다. 그는 프리재즈를 절대 연주하지 말라는 매니저 빌('위플래쉬'의 선생 J. K. 시몬스 깜짝 출연)의 경고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연주하다가 해고된다. 뮤지컬이 한물 간 것처럼 지금은 아무도 재즈를 듣지 않는 시대라는 게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바스찬은 골동품이 되어버린 재즈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위플래쉬'의 재즈가 음악적인 완벽함에 대한 도전이었다면 '라라랜드'의 재즈는 소통의 언어로서 음악의 재발견이다. 영화 두 편을 통해 감독은 재즈 수업의 진도를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음악은 '위플래쉬'의 작곡가 저스틴 허위츠가 만들었다. 그는 감독의 하버드대 동창으로 이번에도 영상과 음악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파트너십을 선보인다. 언젠가 이 영화가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만들어져도 오리지널 스코어로 손색없는 곡들이다.
마법 3. 로스앤젤레스에 바치는 러브레터
"별들의 도시여, 나를 향해 빛나고 있나요? 누가 알까요? 이것이 아름다운 무언가의 시작인지, 혹은 또 한 번 이루지 못한 꿈인지."
세바스찬이 재즈클럽에서 피아노를 치며 읊조리듯 부르는 주제곡 'City of Stars' 가사 중 일부다. 하지만 손님들은 그들만의 대화에 빠져 아무도 그의 노래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오직 한 사람, 미아만이 그의 노래에 흠뻑 빠져 있다. 그렇게 서로의 존재를 모르던 두 개의 작은 별이 만난다.
'미드나잇 인 파리'가 파리를, '전망 좋은 방'이 피렌체를, '물랑루즈'가 시드니를, '로마의 휴일'이 로마를,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이 시애틀을 사랑의 도시로 묘사했던 것처럼, '라라랜드'는 꿈의 공장 할리우드가 있는 이 도시를 장밋빛으로 물들인다.
'라라랜드'는 세바스찬과 미아 외에 로스앤젤레스라는 도시 자체가 또다른 주인공인 영화다. 1949년 개장한 LA의 첫 재즈클럽 카페 라이트하우스, 팜스프링스 케이블카, 워너 브라더스 세트장, 그리피스 천문대 등 영화는 로스앤젤레스 명소 60여곳을 화면에 담는데 어떤 장면은 특별한 대사 없이도 장소가 곧바로 인물의 감정을 전달한다. 제목인 '라라랜드' 자체가 이 도시의 비현실적인 면을 강조한 별칭이기 때문인지 영화 속 로스앤젤레스는 마법을 부린 듯 아름답다.
영화 '라라랜드'는 스토리가 새로운 영화는 아니다. 성공을 꿈꾸는 두 남녀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게 전부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스토리 이상의 특별함이 있다. 몽환적인 색감, 심장을 뛰게 하는 음악, 사랑스런 두 배우의 연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변주하며 휘몰아치는 마지막 10분까지.
'라라랜드'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선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무거운 머리와 복잡한 이성, 지긋지긋한 고민을 안고 있다면 즉시 탄핵시켜야 한다. 그러고 나면 메말라 있던 감성이 솟아올라 온몸을 휘감을 것이다. 마법에 걸리고 싶은 당신, 지금 당장 '라라랜드'로 떠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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