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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터널>에서 붕괴된 터널 속에 갇힌 이정수(하정우)는 체력을 아끼기 위해 잠을 자려다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깜짝 놀라 급하게 손전등으로 차 뒤쪽을 비춰본다. 멧돼지나 늑대 같은 동물이 나타나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는데 불빛에 비친 것은 강아지 한 마리다. 왜 강아지가 여기 있지? 의아하던 순간 한 여성의 신음 소리가 들린다. 미나(남지현)라는 이름의 한 여성이 근처에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왜 터널에 갇히게 된 것일까?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 암시가 담겨 있습니다.)


영화 <터널>


터널은 두 지역을 최단거리로 연결해주는 인공조형물이다. 복잡한 자연지형을 무시하고 길을 내는데 방해가 되는 곳을 음각으로 깎아 지도 위 두 점을 직선으로 연결한다. 오르막길, 내리막길, 나무, 숲, 강, 바다, 암석, 절, 군부대, 도룡뇽 서식지, 철새 도래지 등 그곳에 뭐가 있든 거칠 것이 없다. 모든 반대 이유는 효율성이라는 한 단어로 반박된다.



터널이 없다면 우리는 다른 지형물을 돌아서 가야만 한다. 서울에서 부산을 가기 위해 눌의산, 응봉산, 함지산 등 높고 낮은 산들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한다. 경부고속도로는 12개의 터널을 뚫어 이들을 관통한다. 터널로 인한 경제효과가 수조원에 달한다는 보고서는 언제든 작성 가능하다. 문제가 복잡할수록 가장 쉽고 직관적인 것이 정답이라는 ‘오컴의 면도날’처럼 터널은 물자와 인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수송하기 위한 길이다.


‘터널’은 15세기 영국과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단어다. 당시엔 주로 운하의 물길을 터주기 위해 언덕 밑을 뚫는 것을 뜻했다. 운하의 배는 물류와 군사용으로 쓰였다.


리버풀~맨체스터 에지힐 철도 터널 입구(1829)


본격적으로 터널이 뚫리기 시작한 것은 도시화와 궤를 같이 한다. 도시에 사람들이 모이고 비대해지면서 물자와 사람을 신속하게 운송시킬 필요성은 점점 더 커져갔고 이에 비례해 곳곳에 터널이 뚫리기 시작했다. 1828년 영국 리버풀과 맨체스터간 세계 최초의 기차 운행을 위해 ‘본 터널’이 개통된 이래 곳곳에서 철로와 자동차 도로를 위한 터널이 뚫렸다. 1863년엔 아예 터널 속에 레일과 열차를 설치해 사람을 운반하는 지하철이 런던에서 첫 개통되기도 했다. 터널이 지하도시를 만든 것이다.


1863년 런던 지하철 시험운행


사실 지하도시라는 개념은 아주 오래전에도 있었다. 선사시대 인간은 동굴을 뚫어 그곳에 숨어 살았다. 포식자들의 눈에 띄지 않는 동굴은 비교적 안전한 곳이었기에 인간은 동굴에서 저장해놓은 식량을 먹고 벽에 그림을 그리며 훗날을 도모했다. 이런 속성은 현대인의 DNA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 사람들은 넓은 카페에 가더라도 가운데 자리보다 구석 창가 자리에 앉으려고 한다. 숨기 좋은 곳에서 밖의 상황을 주시하려는 원시 생존본능이 삶의 스타일로 체화된 것이다. 또 보존이 잘 된 동굴은 아치형으로 만들어졌는데 지금도 터널을 지을 때 무게중심을 고려해 아치형으로 짓는다.


멕시코 유카탄 마야 유적지의 한 동굴


기원전 6세기에 지어진 요르단 페트라에 가본 적 있다. 페트라는 바위산을 깎아 만든 도시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알카즈네라는 웅장한 입구까지 가기 위해서는 동굴같은 협곡을 따라 1km나 걸어 들어가야 한다. 해적이었던 바나나테아인들은 당시 맹위를 떨친 알렉산더 대왕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숨어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시를 산속에 지었다. 산속이라고는 하지만 주위에 비해 지대가 낮아 멀리서 보면 이곳은 마치 지하도시처럼 보인다. 워낙 꼼꼼이 숨겨놓은 덕분에 바나나테아인들이 멸망하고 18세기가 될 때까지 사람들은 이곳이 거대한 무덤이라고만 생각했지 도시가 숨어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페트라 입구의 좁은 미로 같은 길을 걷다보면 주위에 음각으로 깎아 만든 조형물들이 보인다. 그중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페트라 전체를 관통하는 가느다란 터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은 물을 운반하던 수로라고 했다. 페트라는 바위산이어서 물이 나오지 않는데 바나나테아인들은 인근 우물의 물을 끌어다 쓰기 위해 도시 전체를 가로지르는 긴 터널을 만든 것이다.


요르단 페트라의 수로


이처럼 터널은 도시를 만들었다. 아니, 반대로 도시가 만들어지고 터널이 그곳에 물과 에너지를 운반했다고 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때나 지금이나 도시는 터널 없이는 지속되지 못한다.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 살게 되고, 한정된 자원을 나누기 위해 이들을 경쟁시킬 보상 체계가 만들어지면서 비용 대비 수익을 내기를 바라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공고해져 갔고, 이에 따라 더 많은 물자와 사람을 더 빨리 수송할 필요성은 점점 더 커져갔다. 이에 비례해 터널은 더 많아지고, 더 길어지고, 더 거대해졌다.


터널은 초고층빌딩과 함께 도시화를 상징하는 구조물이다. 빅뱅 후 가속 팽창하는 우주처럼, 확장으로 방향을 정한 터널은 멈출 줄을 모른다. 도시의 마천루가 구름을 뚫고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수직 확장이라면, 터널은 거대한 산맥과 바다마저 뚫고 늘어나는 수평 확장이다.


스위스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


2016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긴 터널은 스위스 취리히와 이탈리아 밀라노를 잇는 길이 57km의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로 아름다운 알프스 산맥을 수직으로 관통한다. 고속철과 화물 열차, 여객 열차가 시속 250km의 속도로 지나갈 수 있도록 설계돼 2010년 완공됐다.


두번째와 세번째로 긴 터널은 모두 해저터널이다. 일본의 혼슈와 홋카이도를 잇는 세이칸 터널은 1988년 완공됐는데 길이가 53.9km에 달하고, 1994년 완공된 영국과 프랑스의 도버해협을 지나가는 유로터널은 50km다. 두 터널 모두 신칸센과 유로스타라는 고속철이 왕복한다.


2022년 월드컵을 앞두고 카타르 도하에 건설중인 해저터널 다리


전 국토의 70%가 산악 지대인 한국 역시 수백개의 터널이 길과 길을 연결하고 있다. 한국에 처음 뚫린 터널은 서울~신의주간 철도 부설을 위해 지은 서울의 아현터널로 일본 기술에 의해 건설됐다. 일본은 지금도 세계 최고의 터널 굴착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본격적인 터널 착공은 광복 후 경제개발을 위해 주로 산악이 험준한 강원도에서 이루어졌다. 이때 터널은 사람이 아니라 석탄과 강물을 운반하기 위한 용도였다. 터널뿐만 아니라 철도, 도로 등 다른 교통망의 발달과정도 마찬가지인데 효율성의 혜택은 먼저 자원 이동, 그리고 다음으로 사람에게까지 온다. 사람을 운반하는 것은 다른 자원을 운반하는 것에 비해 품도 많이 들고, 비용 대비 효과가 상대적으로 낮은 일인 것이다. 어쨌든 터널을 통과한 석탄과 강물은 발전소에서 전기로 변환돼 전선을 타고 도시로 흘러갔다.


1904년 완공된 한국의 최초 철도터널인 서울 아현터널


한국전쟁 이후 곳곳에 도로가 건설되면서 1955년 준공된 542m 길이의 부산 영주동터널을 시작으로 수많은 터널이 만들어졌다. 터널이 폭증한 시기는 1967년부터 시작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 동안이다.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상징되는 도로망 건설 과정에서 전 국토에 수백 개의 터널이 부산물로 남았다. 이처럼 한국의 급속한 도시화 역시 터널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효율성의 상징인 터널이 도시화를 촉발했다는 점을 기억하면서 다시 영화로 돌아와 보자.


영화 <터널>의 이정수(하정우)


영화 <터널>에서 정수와 미나가 갇힌 하도터널은 지은지 막 1개월 남짓 된 신축 터널이다. 꽤 긴 터널인데도 통행료가 없는 것으로 보아 민자터널이 아닌 국가가 지은 것으로 보인다. 민자터널은 국가가 민간에 공사와 운영권을 매각해 일임하는데 이때 민간사업자는 공사를 위해 쓴 돈을 보전받고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꽤 비싼 통행료를 받으려 한다. 또 사고가 난 시각이 오후 2시로 물동량이 많을 때인데도 무너졌을 때 갇힌 사람이 2명뿐인 것으로 봐서 수요 예측에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막대한 공사비를 들이고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공공시설의 예는 한국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특히 지방 도로나 철로 등에 많다.


이러한 예산낭비와 비효율성은 터널이 가진 속성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터널은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제2 하도터널 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효과를 말하지만 이미 제1 하도터널 역시 경제적 효과가 가시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게 수요예측에 실패하고 부실공사까지 겹친 터널에 두 사람이 갇혔다. 정부가 주장하는 터널의 효율성은 수사에 그칠 뿐, 이들에겐 사람이 갇혔을 때 빼낼 기술조차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은 외부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다. 곧 나갈 수 있을 거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악몽은 쉽게 극복되지 않고, 나쁜 일은 항상 겹치는 법이다. 터널이 가진 효율성은 곧 두 사람의 희망을 철저하게 배신한다.



정수는 자동차 세일즈맨으로 이제 막 차 8대의 계약을 따내고 딸의 생일파티를 위해 일찍 집으로 귀가하는 중이었고, 미나는 주말 신입사원 연수를 앞두고 반려견 탱이와 함께 드라이브를 즐기는 중이었다. 두 사람 모두 터널의 효율성과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있는 직업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부산행>(2016)에서처럼 고속버스 회사의 사장도 아니고, <국제시장>(2014)에서처럼 베트남과 독일에서 고생하며 굵직한 현대사를 목도한 인물도 아니다. 정수와 미나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와 여동생일 뿐이다.


두 사람이 터널로 들어간 것은 터널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지하철이 운행하니까 타고 버스가 도착해서 내리는 것과 똑같다. 어떤 의도를 갖고 선택한 것이 아니다. 터널이 그들의 일을 더 빨리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도 아니고, 터널로 들어가면 대단한 것을 목도할 수 있기 때문도 아니다. 만약 그 터널이 유료터널이었다면 두 사람은 다른 길을 찾거나 혹은 돈 뜯긴다고 생각하며 잠깐 멈칫했을 것이다.


그렇게 터널과 직접적인 관련 없는 두 사람은 무너진 터널에 갇혔다. 정수는 운좋게 전화통화라도 할 수 있지만 거대한 돌에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 미나는 터널 밖과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오로지 정수에게 말을 걸어 전화기를 빌리고 물을 얻어 마시는 방법뿐이다.


영화 <터널>에서 미나 역을 맡은 남지현


그런데 여기서 미나의 태도는 정수와 다르다. 그녀는 엄마와 어렵사리 통화하면서 신입사원 연수회에 못 가게 될까봐 걱정한다. 터널을 나간 뒤 전화통화 하기로 한 고객과의 약속을 전혀 떠올리지 않는 정수와는 딴판이다. 미나에게 연수회는 중요하다. 연수회에 못 가면 회사 적응 기회를 놓치게 되고 그러면 신입사원 간의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 아마도 그녀는 취직 전 혹독한 인턴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그래서 기업의 생리를 잘 알게 됐을 것이다.


미나가 취직한 회사는, 말하자면 <국제시장>에 카메오 출연한 정주영 같은 유능한 창업가들이 세운 대기업 혹은 그 계열사일 가능성이 크다. 그 기업은 터널이 붕괴되기 전 그녀에게 자부심이었겠지만, 터널 속 미나에게는 그녀가 가슴에 안은 채 결코 들어낼 수 없는 무거운 돌이다. 그녀는 죽어가면서도 신입사원 연수회를 걱정한다. 신입사원들과 펼쳐야 할 경쟁을 걱정한다. 경쟁에서 낙오하는 것이 지금 당장 여기서 죽는 것보다 더 두렵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황당한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인가.


영화 <국제시장>의 정주영


수요예측에 실패한 국가 발주 터널 공사가 비효율적으로 진행됐고, 결국 개통 한 달만에 무너졌다. 터널은 효율성을 최대화하기 위해 뚫는 것이지만 하도터널 어디에도 효율성은 보이지 않는다. 유명무실한 효율성의 수사가 관료주의라는 허물에 덧씌워져 있을 뿐이다. 그 무지막지한 돌더미에 깔린 미나는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아픈 옆구리를 손써 보지도 못하고 결국 죽었다.


터널이 한국식 압축성장을 상징하는 무대라면,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한 미나는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효율성이라는 돌덩어리에 깔린 최대 희생자다. 미나를 덮친 돌덩어리는 효율성이라는 명목 하에 착취당한 노동자들의 땀이자 피눈물이고, 부모 세대가 모른 척 남긴 부채이며, 앞이 캄캄한 젊은 세대가 짊어질 삶의 무게다.


영화 <아마겟돈>의 해리(브루스 윌리스)


깊은 바다 속 터널을 뚫는 남자들이 등장하는 영화 <아마겟돈>(1998)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연기한 해리는 NASA의 프리덤호를 타고 소행성에 내려 땅을 파내려간다. 그는 석유를 효율적으로 캐내기 위해 사용하던 그의 독보적인 기술을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해 사용하기로 결심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티격태격하던 딸의 남자친구 AJ 대신 죽음을 택하는데 이때 부모 세대로써 그가 남긴 것은 효율성이 때론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사실 증명이다.


영화 <7광구>의 괴물과 차해준(하지원)


그런데 이 이야기가 한국으로 넘어오면 괴물로 변한다. 제주도 남단 심해에서 굴착공사를 하던 영화 <7광구>(2011)의 이클립스호 대원들은 석유를 캐낼 꿈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이들이 캐낸 것은 석유가 아니라 뜻밖의 괴물이다.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의도야 어쨌건, 어쩌면 이 괴물은 터널의 효율성의 반작용이 만들어낸 상징적 물체였는지 모른다. 효율성은 언제나 솟아오르고 늘어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론 역습을 가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 역습의 결과물이 <7광구>의 괴물이고, <터널> 속 미나의 비참한 죽음이다.


미나는 생존에 실패하고 영화 속에서 잊혀진다. 감독은 더 이상 미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정수가 악전고투를 벌일 때도 미나는 그저 거기에 죽어 있겠거니 여겨질 뿐이다. 35일 만에 정수가 살아서 터널을 빠져나간 뒤에도 미나의 시신을 꺼내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영화는 미나를 삭제함으로써 거기 사람이 죽어있다는 사실을 애써 상기시키지 않는다. 살아서 돌아온 자는 모두에게 “개새끼들아, 다 꺼져버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말이 없어서 안타깝다. 안타까운 개죽음이다.


영화 <박하사탕>의 영호(설경구)


김대경(오달수)을 통해 큰 소리로 전달된 정수의 외침은 영화 <박하사탕>(1999)에서 영호(설경구)의 절규를 떠오르게 한다. 그는 삶이 계속해서 망가져가고 있던 것을 확인한 어느 날 터널 앞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친다. 그의 인생은 어두운 시대라는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한 몸부림처럼 보였지만, 막상 그가 빠져나온 세상에서 그는 터널에서보다 더 외롭고 쓸쓸한 사내에 불과했다. 정수가 살아갈 세상 역시 불신이 가득한 곳이어서 그는 터널에서 빠져나온 뒤에도 마냥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영화 <살인의 추억>(2003)의 마지막 장면에서 박두만(송강호)과 서태윤(김상경)은 박현규(박해일)를 잡아 놓고 갈등하다가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풀어준다. 박현규는 터널 속으로 사라지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 장면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터널은 한 시대를 관통하는 느낌을 줍니다. 시나 소설에서 하나의 시대를 관통할 때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라고 쓰는 것처럼 말이죠. 두 형사가 어두운 터널을 바라보고 서 있는 모습으로 80년대의 사건을 마무리 짓고 현재로 넘어오는 것은 한 시대가 끝났다는 뜻입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송강호)


그렇다. 터널을 빠져나온다는 것은 한 시대가 끝났다는 말이다. 터널 속에 있는 사람이 아프거나 혹은 아프지 않거나, 그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거나 혹은 방관했거나 상관없이 시간은 흐른다. 정수는 빠져나왔지만 미나는 빠져나오지 못했다. 물 한 모금 얻어먹을 때마다 “죄송한데요”를 붙이는 미나는 어둠을 견뎌낼 만큼 영악하지 못했다. 이것은 확장되는 도시화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비록 미나는 죽었지만 그녀의 반려견 탱이는 남아서 정수의 친구가 되어 준다. 정수는 탱이가 없었다면 지독한 외로움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혹은 터널을 빠져나왔더라도 우울증에 시달려 영화에서처럼 그의 아내와 드라이브를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영화 <터널>의 탱이


결국 거대한 돌을 짊어지고 떠난 미나가 남긴 유산은 탱이를 통해 사회에 전해졌고, 이를 통해 우리는 터널이 상징하는 효율성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니 앞으로 터널을 지날 때마다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터널이 무엇을 희생하고 뚫려 있는지 말이다. 아, 물론 안전운전도 잊지 마시길.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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