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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게임 체인저 <하우스 오브 카드>


오바마, 시진핑, 힐러리 클린턴이 열렬한 팬이라고 고백한 미국 드라마가 있다. 오바마는 시즌2가 공개되기 하루 전인 2014년 2월 13일 트위터에 ‘스포일러 금지’라고 썼고, 커트 캠벨 전 미 국무부 차관보는 3월 FT에 ‘중국 정치인은 왜 하우스 오브 카드를 좋아하는가’라는 기고문을 싣었으며, 힐러리 클린턴은 “남편과 함께 이 드라마에 탐닉했다”고 털어놓았다. 유력 정치인들이 빠져들만큼 권력 다툼과 정치의 속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는 미국 하원 원내대표와 부통령을 거쳐 대통령에 등극하는 프랭크 언더우드와 워싱턴 정가의 치열한 암투를 그리고 있다. 총 3부작으로 기획된 이 드라마는 2013년 2월 1일 시즌1이 공개된 이래 기존의 드라마 제작과 소비 시스템을 뒤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게임체인저’의 호칭을 얻었다. 넷플릭스가 이 드라마를 제작하게 된 과정을 따라가보자.



자체 콘텐츠가 필요해


2012년은 미국인의 영화보기 관습에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 해였다. 인터넷을 통해 영화를 보는 비율이 블루레이나 DVD를 통해 보는 비율을 처음으로 넘어선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본다는 것은 다운로드나 스트리밍을 통해 본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시청자 개념은 사라지고 '다운로더' '방문자' 혹은 '페이지뷰' 숫자가 이를 대체한다. TV의 경우, '본방사수'가 줄고 ‘몰아보기(Binge Watching)’와 ‘다시보기’가 늘었다. 드라마를 TV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로 보는 시청자도 급증했다. 한 자리에서 수십 개의 에피소드를 몰아보는 드라마 폐인도 생겨났다. 바야흐로 브로드캐스팅(Broadcasting)의 시대는 저물고, 스트리밍(Streaming)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넷플릭스는 2011년 VOD 사업자들이 콘텐츠 가격을 올리면서 실적이 적자로 돌아서는 위기를 맞은 바 있다. 이에 콘텐츠의 중요성을 절감해 자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회원에게 인기 있는 콘텐츠와 피드백 수를 감안해 어떤 콘텐츠를 대체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계산한 뒤, VOD 사업자로부터 콘텐츠를 구입할 때의 효용과 그와 비슷한 콘텐츠를 직접 제작했을 때의 효용을 서로 비교했다. 결과는 자체 제작이 비용 대비 효용 면에서 더 승산이 있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이와 같은 빅데이터 분석 끝에 탄생한 넷플릭스의 첫 자체 제작 드라마다.


넷플릭스는 자체 개발한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회원들이 어떤 장르의 영상콘텐츠를 선호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추천 서비스가 회원들의 취향과 콘텐츠 사이의 공통점이라는 '교집합'을 찾아내는 작업이라면, 드라마 제작은 회원들의 취향과 콘텐츠의 범위를 계속 확장해가며 '합집합'을 만드는 작업이다. 즉, 회원들의 선호도를 유지하는 선에서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넷플릭스는 일시 정지, 되감기 등의 이용 행태를 포함해 하루 평균 3천만 건의 동영상 재생 기록, 최근 3개월의 기간에 해당하는 20억 시간 이상의 동영상 시청 기록, 또 하루 평균 400만 건의 이용자 평가 및 300만 건의 검색 기록, 위치 정보, 단말 정보, 주중 및 주말의 시청 행태, 영상물의 색깔톤과 음량, 시청률 조사업체 닐슨(Nielsen)을 비롯한 시장조사 업체가 제공하는 메타데이터, 페이스북과 트위터로부터 수집한 소셜데이터 등을 추적해 제작할 콘텐츠의 예측 분석에 나섰다.


또 사이트 내부 뿐만 아니라 외부 영상콘텐츠의 선호도 역시 빅데이터로 분석했는데 이를 위해 넷플릭스는 인기 불법 파일공유 사이트 비트토렌트도 대상에 올렸다. 그러나 무조건 인기가 있다고 해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콘텐츠는 대형 스크린에 더 어울릴 것이고, 어떤 콘텐츠는 실시간 방송에 더 적합할 수 있다. 인터넷 스트리밍 형식에 적합한 콘텐츠는 조금 더 강렬하면서 익숙한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어야 했다.


넷플릭스가 빅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자체 회의 끝에 결정한 것은 1990년에 방영된 영국 BBC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를 리메이크하는 것이었다. 넷플릭스는 캐스팅을 위해 해당 BBC 드라마를 좋아하는 회원들의 선호도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들은 케빈 스페이시가 주연한 드라마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을 검색해서 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빅데이터가 프로듀서의 역할을 대체한 것이다. 기존 할리우드가 제작자의 직감과 개인적 선호에 의해 드라마나 영화를 제작해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같은 과정이 얼마나 큰 변화인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방식이 할리우드에 정착되면 앞으로 배우나 감독은 자신의 커리어가 만들어내는 데이터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캐스팅이 결정되자 넷플릭스는 1억 달러를 투자해 시즌 1과 2의 제작에 들어갔다. 1억 달러를 두 시즌 26회로 나누어보면 편당 40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인데, 이는 한국 드라마의 편당 제작비인 1억원 선보다 월등히 높지만 기존 미국 드라마 중에서는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미드 중 최고 제작비를 들인 <더 퍼시픽>은 편당 270억,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편당 125억을 썼고, <왕좌의 게임>은 편당 50~60억을 들였다.)



시청자에게 콘트롤권을 주다


넷플릭스는 2013년 2월 1일과 2014년 2월 14일 각각 시즌1과 시즌2의 에피소드 13편씩을 동시에 공개했다. 시리즈 드라마가 모든 에피소드를 동시에 공개하는 것은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한 회씩 공개할 때 긴장감(Cliffhanger)을 유발해서 시청률을 올려가는 방식을 포기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시청자 입장에서 보면 익숙해진 ‘몰아보기’를 좀더 일찍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방식이었다.


이에 대해 <하우스 오브 카드>의 주인공 케빈 스페이시는 2013년 8월 에딘버러 텔레비전 페스티벌에서 열린 강연에서 “이제는 시청자에게 콘트롤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며 한번에 시즌 전체를 공개한 넷플릭스 모델이 정착될 거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청소년들은 아이패드에서 영화를 보든, 유튜브나 TV에서 보든 상관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콘텐츠의 힘이 성공을 좌우할 거라고 강조하며,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원하는 형식과 적정 가격으로 제공하면 불법 다운로드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우스 오브 카드> 효과는 놀라웠다. 애초 취향에 맞춘 타겟 시청자는 물론 입소문 효과에 힘입어 넷플릭스에 대해 잘 모르던 사람들까지 사로잡았다. 감독과 배우의 앙상블에 탄탄한 플롯이 뒷받침되자 시청자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는 이 드라마의 인기 덕분에 2013년 1분기에만 300만 명의 신규가입자가 늘었고, 매출은 2013년 37억5000만 달러(약 3조8000억원)로 창사 이래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한때 실적 부진으로 나스닥 퇴출을 걱정했던 넷플릭스는 타임워너에 맞먹는 미디어 기업으로 급부상했다. 2014년 6월 넷플릭스의 전세계 가입자 4400만명은 합병한 컴캐스트와 타임워너케이블의 가입자 수보다 많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에미상과 골든글로브에서도 수상했다. 2013년 9월 22일 열린 제65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하우스 오브 카드>는 9개 부문의 후보에 올라 감독상, 촬영상, 캐스팅상 등 총 3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온라인 시리즈가 에미상에 참가할 수 있도록 2007년 룰이 개정된 이래 실제로 온라인 시리즈가 에미상을 수상한 것은 사상 처음이었다. 이는 플랫폼 게임체인저인 넷플릭스가 콘텐츠로도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한지 3년도 되지 않아 플랫폼 사업자가 콘텐츠로 성공한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시리즈 <왕좌의 게임> <소프라노스>를 만든 HBO와 곧잘 비교된다. 그러나 HBO가 수십 년이 걸려 해냈던 일을 넷플릭스는 불과 2~3년만에 이루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Netflix Original)’의 첫 시리즈인 <하우스 오브 카드>의 성공 노하우는 차기작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3년 이후 선보인 시트콤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Arrested Development)>, <오렌지는 새로운 검정(Orange is the New Black)>, <헴록 그로브(Hemlock Grove>, <릴리함메르(Lilyhammer)> 역시 예측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제작을 진행했고, 별다른 프로모션을 진행하지 않았지만 <하우스 오브 카드> 못지않은 초반 돌풍을 일으켰다.



카드로 만든 집


<하우스 오브 카드>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예견된 수요를 충족시키는 전략으로 만들어졌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글로벌한 성공을 거둘 수 있던 비결에는 무엇보다 드라마의 완성도와 스토리의 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데이비드 핀처와 케빈 스페이시는 명성에 걸맞는 연출력과 연기를 보여주었다. 금권 만능주의와 권모술수로 가득한 미국 정치에 대한 섬뜩한 묘사와 곳곳에 배치된 명대사, 촘촘한 갈등구조는 매회 긴장감을 잃지 않아 13부를 단숨에 돌려보게 했다. 기존 드라마들이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소위 '떡밥'을 던지며 불필요하게 늘어트린데 반해 <하우스 오브 카드>는 전회 공개로 그럴 필요가 없었기에 좀더 이야기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다.


프랭크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는 대통령이라는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협잡, 언론 조작 뿐만 아니라 살인도 서슴지 않는 위험한 인물이다. 주인공으로서는 드물게 반영웅인 캐릭터다. 아내 클레어 역시 남편 못잖은 권력욕을 갖고 있는데 둘다 바람을 피우면서도 서로 눈가아주며 오로지 백악관을 위해 돌진한다.


드라마는 프랭크의 방백을 통해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드러낸다. 시즌 1의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뺑소니차에 치여 죽어가는 이웃집 개의 목을 조르는 프랭크는 “고통에는 두 가지가 있어. 사람을 강하게 하는 고통과 그냥 괴롭기만 한 고통. 난 쓸모없는 건 못 참아. 내가 하는 일도 이 개를 죽이는 것과 비슷해. 누구나 하기 싫어하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지”라고 말한다. 또 그는 “민주주의는 과대평가돼 있다”며 로비와 불법으로 더 많은 선거자금을 모으는 사람이 당선되고, 단 한 번의 선거도 치르지 않은 자신이 권모술수로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정치라고 말한다.


이처럼 주인공이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에게 호응을 얻은 것은, 드라마가 재현하는 미국 정치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시청자들의 암묵적인 동의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미국 정치가 최근 몇 년새 진보와 보수로 극도로 양극화되고, 선거자금 모금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행태와 직결된다. 1999년부터 2006년 사이에 방영되며 인기를 끌었던 미국 NBC의 <웨스트 윙>과 비교해보면 그 대비가 확연히 드러난다. 그 드라마에서는 대통령, 백악관 참모 뿐만 아니라 이들의 정적과 로비스트까지도 선한 의지를 바탕으로 협상과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신봉하고 있었다. 몇 년 사이에 미국 정치가 타협을 모르는 극단주의로 돌진해가고 있고, 드라마는 이를 시의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미국 정치의 탐욕스러움을 비판하면서 현재 세계를 움직이는 진짜 힘은 중국에 있다고 말한다. 드라마 속 미국의 새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중국에 매달린다. 시진핑이 이 드라마를 즐겨본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 있을 것이다. 시즌 3까지 예고된 <하우스 오브 카드>는 권력자의 파워 게임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카드로 만든 집’과 같다고 말하며 오늘날 이미지만 난무하는 미국 정치의 이면을 조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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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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