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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의 <설국열차> vs 롯데의 <더 테러 라이브>


공교롭게도 박근혜 정권에서 수사받으며 신문 기업면이 아닌 사회면에 주로 오르고 있는 두 재벌이 내놓은 새 영화가 8월의 한국영화계를 양분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편의 영화가 지금처럼 맞짱을 뜨리라고 예상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설국열차>는 2009년 제작발표 때부터 기대를 모아온 거대 국제 프로젝트였다. <괴물>의 봉준호 감독에 틸다 스윈튼, 크리스 에반스, 존 허트, 에드 해리스 같은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은 물론 <월드워Z>의 작곡가 마르코 벨트라미, <일루셔니스트>의 미술감독 스테판 코바칙 등 유명 스탭까지 참여했다. CJ의 주도 하에 미국과 프랑스에서 공동 참여했고,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을 촬영했던 체코의 스튜디오에서 대부분의 분량을 찍었다. 430억의 제작비가 들어간 이 영화는 손익분기점만도 1400만 명의 관객을 기대해야 하는 프로젝트지만 이미 해외에서 선판매를 통해 그 절반 정도를 회수했기에 한국에선 700만~800만 명 정도의 관객만 모아도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서 박찬욱, 김지운 감독의 영화가 흥행에서 큰 재미를 못본 터라 봉준호의 신작에 쏠리는 시선은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반면 총제작비 60억원이 든 <더 테러 라이브>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영화다. 사실 올해 롯데의 기대작은 하반기 개봉 예정인 <타짜 2>다. 작년 하반기 부진으로 올해는 대작보다는 내실 있는 영화로 승부하기로 한 롯데지만 <연애의 온도>의 고만고만한 성적표를 제외하곤 <남쪽으로 튀어> <전국노래자랑> <미나문방구> 등 어느 하나 히트작이 없어 고민이 컸다. 기대를 모았던 <분노의 윤리학>은 <신세계>에 밀려 처참한 관객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여름 들어 수입 배급한 <월드워Z>의 성공으로 정신을 차린 롯데는 <더 테러 라이브>로 여름휴가철 큰 시장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설국열차>와 맞짱을 뜨기 전까지 <더 테러 라이브>에 대한 기대는 두 가지였다. 몇 년 동안 30번이나 수정을 거듭한 신인감독의 시나리오가 좋다는 것과 요즘 '대세'인 하정우가 거의 단독으로 모든 장면에 출연한다는 것. 올해 초 <베를린>도 하정우의 힘으로 뒷심을 발휘한 영화였기에 자신감은 있었을 것이다. 영화만 잘 나와준다면.


다윗이 되고 싶은 골리앗에 맞장 뜬 또다른 골리앗


<더 테러 라이브>의 개봉일을 잡으며 롯데는 2010년 9월 추석 시즌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CJ가 <영웅본색> 리메이크인 주진모 송승헌 김강우 조한선 등 호화캐스팅의 <무적자>로 공격하자 로맨틱 코미디 <시라노 연애조작단>으로 반격해 의외의 대승을 거두었던 시즌 말이다. 2011년엔 CJ의 대작 <마이웨이>에 대적해 <퍼펙트게임>으로 맞불을 놓았지만 둘 다 잘 안 됐던 흑역사도 있다.


<설국열차>는 일찌감치 8월 1일을 개봉일로 확정하고 대규모 언론시사회를 열었다. <더 테러 라이브>의 개봉일도 8월 1일이었지만 이때까지만해도 이 날짜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설국열차> 시사회에서 기자와 평론가들의 뜨끈미지근한 반응이 나오고 바로 다음 날 <더 테러 라이브>의 언론시사회에서 호평이 쏟아지면서 분위기는 반전되기 시작했다. 해볼 만하다는 인식이 퍼진 것도 이 시기다. 두 영화가 비슷하게 계급문제를 다루고 있고,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공통점까지 회자되면서 두 영화를 비교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제작비가 10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는 점은 흥미를 돋우는 제목으로 쓰였다. <더 테러 라이브>의 입장에서는 손 안대고 홍보효과를 얻은 셈이다. <설국열차>가 이를 의식한 듯 개봉일을 하루 앞당겨 첫주 스코어 기록경신을 노리자 <더 테러 라이브>도 개봉일을 하루 앞당겼다. 결과는 첫 주 <설국열차> 330만 명, <더 테러 라이브> 180만 명으로 '윈윈.' <설국열차>는 대규모 물량공세가 먹혀 들며 질주했고, <더 테러 라이브>의 입장에선 손익분기점 180만 명을 돌파하며 행복한 주말을 보냈다. 똘똘한 홍보전략 덕에 <더 테러 라이브>는 <설국열차> 만큼의 대작으로 보이는 효과를 거둔 것이다. 10년 전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의 물량공세에 맞서 <실미도>가 입증했듯이 콘텐츠가 좋으면 결국 입소문이 승패를 가를 거라는 마케팅의 승리다.


대작에 맞짱을 뜨는 전략이 새로운 것은 물론 아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가끔 이긴다. 노무현은 이런 방법으로 대통령이 됐고, 넷플릭스는 블록버스터를 무너뜨렸고, PC-통신-음악업계를 굴복시킨 다윗이었던 애플은 또다른 골리앗이 돼 고전중이다. 관객의 취향과 유행을 가늠할 수 없는 영화계에서라면 그런 일은 더 쉽게 일어난다. <설국열차>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름이 회자돼 낡은 느낌이 있던 반면 <더 테러 라이브>는 신선하게 보였다. <설국열차>는 국제적 프로젝트라 주인공과 언어가 이질적으로 느껴졌지만 <더 테러 라이브>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라 몰입도가 높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중은 항상 약자의 편이지 않은가.


이쯤되면 '골리앗에 맞짱 뜬 다윗'으로 <더 테러 라이브>의 '상대적' 승리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설국열차>가 사용한 마케팅 방식도 <더 테러 라이브>의 다윗 전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설국열차>의 제작비 430억원은 할리우드 영화로 따지면 인디영화 제작비 수준에 불과하다. 할리우드의 훌륭한 배우들이 출연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톰 크루즈 같은 A급 배우들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어벤져스>의 크리스 에반스가 나오는 인디영화 정도라고 할까. 북미지역 배급을 맡은 와인스타인 컴퍼니는 <장고: 분노의 추적자>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같은 멋진 영화를 만들고 <일대종사> 같은 뛰어난 중국영화를 미국에 소개하는 역할을 하는 메이저 스튜디오지만 그들의 라인업에서 <설국열차 Snowpiercer>는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아마도 2014년 <캡틴 아메리카>의 속편 개봉일과 비슷한 시기로 맞추지 않을까 싶다. 결국 CJ의 홍보 방식도 '세계가 격찬한 한국 천재감독'에 포커스가 맞춰졌고 외부의 눈으로 볼 때 다윗인 한국영화가 이 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말하자면 다윗이 골리앗에 버금가는 영화를 만들었으니 많이 봐달라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엄청난 규모를 강조하지만 결국 초점은 '과거에 비해'에 맞춰진 셈이다.


한편 두 영화가 극장가의 스크린을 대부분 점령하면서 지난 번 <은밀하게 위대하게> 이후 또 한 번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영화계의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집계에 따르면 <설국열차>는 1102개, <더 테러 라이브>는 723개의 스크린을 확보했다. 전국의 스크린 갯수가 2500여 개이므로 두 영화가 무려 73%의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극장에 가도 다른 영화는 거의 볼 수 없다. 영진위에 따르면 '퐁당퐁당' 상영이 잦기 때문에 스크린 확보를 온전하게 비율로 계산하면 오류가 있어 <설국열차> 26% <더 테러 라이브> 17% 정도의 점유율에 그친다고 하는데 사실 이는 눈가림일 뿐이다. 지금 전국의 어느 극장에서 과연 이 두 영화를 다른 영화와 묶어 '퐁당퐁당' 상영할 수 있을까? '퐁당퐁당' 상영은 작은 영화와 다양성 영화 두 편을 묶어 상영하는 방식이다. 흥행이 잘 되는 상업영화라면 끝물에 가끔 이뤄지는 정도다. 영진위의 해명이 오히려 더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형국이다.


<더 테러 라이브> 역시 스크린에 걸리지 못해 경쟁할 기회도 갖지 못한 다른 영화 입장에선 또다른 골리앗이다. 결국 두 영화의 대결은 다윗이 되고 싶은 큰 골리앗과 그보다 좀 더 작은 골리앗의 대결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다음 글에서는 두 영화의 내용을 본격적으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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