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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대학생들과 젊은층으로 구성된 트렌드헌터를 통해 소비 트렌드를 조사해 매년 10개 키워드로 발표하고 있습니다. Z세대들이 직접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만드는 키워드라서 꽤 잘 맞는 편이고 또 신조어를 맛깔나게 잘 만들어서 ‘가심비’ ‘소확행’ 같은 용어는 이미 고유명사가 되기도 했지요.

2022년도 10월에 접어들면서 어느새 2023년 ‘검은 토끼해’ 트렌드 키워드가 공개되었습니다. 마케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매년 놓칠 수 없는 키워드일텐데요. 올해는 독특한 신조어는 없지만 역시나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트렌드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김난도 교수



2023년 10대 소비 트렌드 키워드
RABBIT JUMP 웅크렸던 토끼가 더 멀리 뛴다

 



1. Redistribution of the Average 평균 실종

평균과 기준, 정형이 사라진 사회. 중간이 없는 승자독식의 세상, ‘평균’이라는 안전지대는 더 이상 없다.

평균 기준, 통상적인 것들에 대한 개념이 무너지고 있다. 소득의 양극화는 정치, 사회 분야로 확산되고 갈등과 분열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소비 역시 극과 극을 넘나들고 시장은 '승자독식'으로 굳혀지고 있다. 중간이 사라지는 시대, 평균을 뛰어넘는 당신만의 대체 불가한 전략은 무엇인가?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우리 사회는 확실히 양극화된 것 같습니다. 자산시장 거품이 빠지고 있지만 백화점 명품은 없어서 못 삽니다. 물가가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어서 왠만한 물건은 가격이 다 올랐습니다. 사람들은 꼭 필요한 소비만 합니다. 평균은 없고 점점 양극단만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2. Arrival of a New Office Culture: Office Big Bang 오피스 빅뱅

이제 사무실로 출근하세요 vs 저 그만둘게요
대사직, 조용한 퇴사, 하이브리드 근무, 긱워커… 일터의 정의가 송두리째 바뀐다.

팬데믹 이후 일터로의 복귀를 거부하는 '사직', 최소한의 일만 하는 '조용한 사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출퇴근과 워라밸, 재택과 하이브리드 근무가 뒤섞이는 가운데 과거의 직장 문화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송두리째 달라지는 일터에서 조직과 개인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코로나 시대에 확산된 재택근무가 확실히 일에 대한 정의를 완전히 바꿔버린 것 같습니다. 굳이 사무실에 출근해야 하는지, 굳이 회식을 해야 하는지, 굳이 대면 회의를 해야 하는지, 굳이 야근을 해야 하는지… 세대에 따라 적응 정도는 다르지만 업무방식은 확실히 변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월급 받는 만큼만 적당히 일하는 ‘조용한 퇴직’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아마도 가장 눈에 띄는 변화인 듯합니다.


3. Born Picky, Cherry-sumers 체리슈머

단물만 쏙 빼먹는 얄미운 소비자가 아닌 현대판 보릿고개를 넘는 소비의 영리한 진화.
적극적인 불황관리형 소비자의 탄생이다.

구매는 하지 않으면서 혜택만 챙겨가는 소비자를 체리피커라고 한다면, '체리슈머'는 한정된 자원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대한 알뜰하게 소비하는 전략적 소비자를 일컫는다. 무지출과 조각, 반반, 공동구매 전략을 구사하는 이들은 현대판 보릿고개를 지혜롭게 넘고자 하는 진일보한 합리적 소비자들이다.


체리피커가 체리슈머로 진화했다고 하네요. 둘의 차이점은 체리슈머는 알뜰하게 소비를 하기는 한다는 거죠. 요즘 Z세대들 사이에서 짠돌이 재테크가 유행하고 있는데 혜택을 많이 주는 신용카드로 갈아타고 할인 정보를 공유하고 이벤트에 꼬박꼬박 참가하는 등 최대한 알뜰하게 또 최대한 혜택을 누리면서 소비하고자 하는 경향을 체리슈머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과거 욜로족이 트렌드였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입니다. 그만큼 물가가 오르고 자산시장은 폭망했는데 월급은 오르지 않아서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는 것이겠죠.


4. Buddies with a Purpose: Index Relationships 인덱스 관계

베프, 실친, 페친, 트친, 인친, 찐친… 목적지향적인 관계의 시대, ‘친하다’의 정의는 과연 무엇인가?

관계의 '밀도'보다 '스펙트럼'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로빈 던바가 말한 인간관계의 적정한 수 150명은 이 시대에도 맞는 걸까? SNS를 통한 목적지향적 만남이 대세가 된 오늘날, 소통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면서 관계는 여러 인덱스(색인)로 분류되고 정리된다. 이제 나의 친구는 어디까지인가?


온라인에서의 만남이 일상화된 시대입니다. 시간 낭비를 싫어하는 Z세대들은 이유없는 만남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사람을 만납니다. 모여서 공부를 하기 위해 만나거나 운동을 하기 위해 만나거나 게임을 하기 위해 만납니다. 만나서 목적을 달성하면 거기서 관계가 발전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걸로 끝입니다. 예전 세대처럼 친구라고 하면 아무때나 만날 수 있다는 개념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5. Irresistible! The New Demand Strategy 뉴디맨드 전략

불황에도 사람들은 지갑을 연다. 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그 무엇, 아이폰과 다이슨은 그걸 해냈다.

아이폰을 내놓은 스티브 잡스는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른다." 소비자가 아예 생각지도 못한 제품을 내놓았을 때 그들은 줄을 서고 지갑을 연다. 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상품, 지금껏 써왔지만 더 새롭고 매력적인 상품 결제 방식이 유연한 상품 등 다채로운 뉴디맨드 전략을 만나보자.


아이폰14 판매량이 기대에 못 미쳤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는데 아이폰을 예로 드는 게 맞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사람들이 고물가 시대에 아무리 돈을 아껴 쓴다고 해도 꼭 사고 싶어하는 제품에는 지갑을 연다는 말은 맞는 것 같습니다. 캠핑 용품이나 포켓몬빵, 레깅스, 애슬레저룩 제품 등등 도저히 사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드는 머스트해브 아이템들이 있죠.


6. Thorough Enjoyment: Digging Momentum 디깅모멘텀

파고, 파고, 또 파고 끝까지 파고들어가 행복한 과몰입'을 즐기는 사람들, 디깅러의 세상이 오고 있다. 자신의 열정과 돈,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이들은 과거의 오타쿠와 달리 현실도피적이지 않으며 덕후와 팬슈머보다 더 진일보한 사람들이다. 우리 모두 다같이, Let's dig in!


덕후나 오타쿠보다 더 진일보한 과몰입러라고 하니 MBTI를 맹신하거나 연예인에 빠져있거나 스포츠에 진심이거나 하는 사람들이 생각나네요. 이들이 예전처럼 오타쿠나 덕후라고 불리지 않는 것은 과몰입러들이 그만큼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다들 한 가지씩 무언가에 빠져있기 때문에 오히려 관심 없어하는 사람들이 더 아웃사이더가 되는 거죠. 최근 MBTI 열풍이 휩쓸고 가면서 사람들을 만날 때 MBTI가 단골 이야깃거리가 된 것이 적절한 예인 것 같아요. MBTI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현실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에서 사람을 만날 때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MBTI에 빠져 있다고 말합니다.


7. Jumbly Alpha Generation 알파세대가 온다

2010년 이후에 태어난 진짜 신세대, 알파세대가 떠오르고 있다. 태어나서 처음 한 말이 '엄마'가 아닌 '알렉사'였다는 이들은 단순히 2세대의 다음 세대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종족의 시작이다. 100퍼센트 디지털 원주민이자 벌써부터 세상을 놀라게 하는 알파세대, 그들의 미래가 곧 우리의 미래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이 있다는 건 어떤 걸까요?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을 갖고 놀면서 자란 세대는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갈까요? 저는 상상이 잘 되지 않습니다만 2010년 이후에 태어났다면 그런 세상이 당연하겠죠. 이들이 성인이 되는 세상은 지금과 또 완전히 달라지겠죠? 내추럴 본 스마트폰 세대가 만들어갈 세상이 궁금해집니다.


8. Unveiling Proactive Technology 선제적 대응기술

지금 기분에 맞는 노래 뭐가 있을까? 실내가 좀 어두운데 밝으면 좋겠어. 냉장고에 남은 우유가 있던가?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이 모든 순간에 요구하기 전에 미리 알아서 배려해주는 기술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선제적 대응기술이다. 삶의 각종 편의를 넘어서, 사회적 약자를 돕고 사고를 미리 예방하는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기술이다.


나의 취향과 나의 생활습관을 인공지능이 알고 있다면 내가 먼저 요구하기 전에 나에게 맞는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겠죠.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가장 기대하는 것이 아마도 이런 부분일 겁니다. 나만을 위한 맞춤형 비서 같은 개념이죠. 며칠 전 테슬라가 개인용 비서 로봇을 개발해 2만 달러 아래의 가격으로 출시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되었는데요. 머지 않아 선제적 대응기술이 테크 업계에선 주요 화두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선제적 대응기술’이라는 키워드는 김난도 교수님답지 않네요. 좀더 재미있는 신조어로 만들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9. Magic of Real Spaces 공간력

멋지다고 소문이 난 공간은 어디에 있든 늘 사람들로 붐빈다. 실제공간은 단지 온라인의 상대 개념이 아니라 우리 삶의 근본적인 토대이자 터전이다. 아무리 정교한 가상공간이라도 실제를 이길 수는 없다. 소매의 종말이 언급되는 시기지만, 매력적인 컨셉과 테마를 갖추고 '비일상성'을 제공하는 공간력은 리테일 최고의 무기가 될 것이다.


이 키워드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곳은 여의도의 ‘더 현대’였어요. 사람들이 아무리 온라인 쇼핑에 익숙해져 있다고 해도 공간이 주는 매력은 어마어마하죠. 최신 트렌드 브랜드를 세련되게 모아놓고 쾌적한 휴식공간도 갖춘 공간은 일년내내 쇼핑객과 관광객들로 북적거립니다.


10. Peter Pan and the Neverland Syndrome 네버랜드 신드롬

요즘 어른 되기를 한껏 늦추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모두가 어린아이로 영원히 살아가는 곳, 이른바 '네버랜드'의 피터팬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젊음을 미화하고 우상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진짜 어른을 만나기 힘든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청춘의 열정과 어른의 지혜를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40대는 영포티라고 불리고 50대는 불타는 청춘이라고 불립니다. “50대라고 믿을 수 없는 최강 동안 미모”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기사 제목입니다. 시니어들을 상대로 하는 업체들은 50대 이상의 고객들을 상대할 때 금기어가 있습니다. 바로 ‘시니어’라는 단어입니다. 나이 들었다고 확인시켜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우리 사회는 젊음에 대한 강박이 특히 심합니다. 미용기술이 발달하면서 40대 50대 60대가 되어도 예전보다 훨씬 젊어보인다는 것도 이유일 것입니다.

네버랜드 신드롬은 모두가 어린아이로 살아가면 누가 어른 노릇을 할 것인가 라고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데요.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어차피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는 한국에서 굳이 먼저부터 뒷짐지고 어른 노릇을 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아이의 호기심으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관리하면서 최대한 천천히 늙어가는 게 평균 연령이 점점 높아질 우리 사회 전체 분위기에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불혹이니 지천명이니 하는 단어는 공자가 살던 2500년 전에 나온 단어죠. 그때와 지금은 평균수명이나 미용기술이 전혀 다른만큼 나이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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