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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대표하는 방송, 신문, 통신사에 차례로 방문했습니다.


옥스포드 서커스 근처에 있는 BBC

킹스 크로스에 있는 가디언

캐너리 워프에 있는 톰슨로이터


세 개의 거대 미디어 그룹 본사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적어보겠습니다.


BBC 본사 전경

BBC 본사 입구에 전시된 '닥터 후'

BBC World 아프리카 사무실

BBC World 아프리카 스튜디오

넬슨 만델라 휴게실


BBC


영국인들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영 방송국입니다. 1922년에 설립됐으니 몇 년 후에 100주년을 맞이합니다. BBC1, BBC2, BBC3, BBC4, CBBC, Ceebeebies, BBC News, BBC Parliament, BBC World로 구성됩니다. 라디오는 BBC1, 2, 3, 4, 5채널로 운영 중입니다. BBC 하면 시사 프로그램이 강점이죠. 라디오에도 기자가 있더라고요. 라디오 기자들은 30분짜리 시사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BBC는 영국인들의 자부심이죠. 영국에서도 기자가 되고 싶은 수많은 청년들이 BBC에 지원한다고 해요. 하지만 BBC 기자 출신 관계자에 따르면 BBC의 연봉은 ‘험블’하대요. 업계 최저 수준이라나요. 아무렴 공영방송이니까요. 수신료는 연간 145.5파운드. 한화로 약 19만원 정도 됩니다.


본사 입구에서 출입증을 받아서 들어가면 거대한 통합 뉴스룸을 볼 수 있어요. 인솔자에 따르면 이렇게 거대한 통합 뉴스룸이 1,2,3층에 걸쳐서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TV, 라디오, 인터넷용 콘텐츠를 만듭니다.



4층부터는 BBC World 제작국입니다. BBC는 수십개의 언어로 세계 각지에 방송을 내보냅니다. 2015년부터는 한국어 방송도 시작했어요. 남한에서는 페이스북을 통해 영상뉴스를 내보내고 있고, 북한으로도 단파 라디오 방송을 송출한다고 해요. 한현민 씨가 나온 인종차별에 관한 세 남자의 토크쇼가 작년 한국에서 꽤 화제가 된 적 있었는데 이 영상을 만든 곳이 바로 BBC Korea입니다.


BBC에서 제가 만난 사람은 아시아 부매니저 레자 아사디와 한국어 방송 에디터 황수민 씨였는데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멘트는 BBC는 수익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페이지뷰 같은 압박이 없다는 말이었어요. 황수민 씨는 두 달에 한 번 꼴로 서울에 간다는군요. 서울역 앞에 BBC 코리아 사무실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가디언 본사

가디언 박물관에 전시된 '맨체스터 가디언' 간판

가디언 초대 편집장 C.P. 스콧의 이름을 딴 '스콧룸'

팟캐스트 스튜디오


가디언 The Guardian


킹스 크로스 지하철역에 내려서 북쪽으로 10분쯤 걸어가면 가디언 사무실이 나와요. 모던하게 생긴 큰 건물 중 3개층을 임차해서 사용하고 있대요. 10년 전에는 사옥이 있었는데 팔고 지금의 사옥으로 이사했다고요.


가디언은 영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퀄리티 신문입니다. 정론지인데다가 수익성도 최근 좋아져서 업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죠. 디지털 전환에 성공해서 돈을 내고 사이트를 구독하는 후원자가 무려 85만명이나 돼요. 가디언은 모든 기사를 온라인에 무료로 풀고 있는데도 돈을 내고 멤버십에 가입한다는 것은 그만큼 가디언을 지지한다는 뜻이죠. 트럼프 당선, 브렉시트 때 특히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하는군요. 작년에는 회원들의 자발적인 기부를 통한 수익이 처음으로 신문 광고 수입을 넘어섰대요.


존 헨리 기자


저는 존 헨리(Jon Henley) 기자를 만났어요. 가디언은 멀티미디어 뉴스를 유럽에서 최초로 시도한 신문사인데요. 산불을 주제로 글과 영상을 결합한 ‘파이어스톰’이라는 멀티미디어 콘텐츠로 퓰리처상을 받았죠. 존 헨리가 바로 그걸 만든 사람입니다.


헨리와의 대화 중 인상 깊었던 것은 그가 “5년 안에 종이신문은 주말판만 남기고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 부분이었어요. 아무도 종이신문을 보지 않잖아요. 아직 런던 지하철에는 신문 읽는 사람이 있긴 합니다만 거긴 인터넷이 잘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이 보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어쨌든 영국에서도 종이신문의 매출 감소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디언 기자들은 더 이상 글만 쓰는 게 아니라 소셜미디어나 영상 콘텐츠도 만들어야 합니다. 헨리 역시 25년차 기자이지만 더 이상 글만 쓰지 않고 트위터 라이브, 팟캐스트 등 멀티미디어 시도를 계속 하고 있었어요.



가디언에는 500~600명가량의 기자가 있대요. 이중 해외특파원만 100명이 넘어요. 영국 언론들이 대부분 이런 식인데 해외특파원의 수가 엄청나요. 영국인들은 국내 이슈보다 세계 각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정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만난 영국 기자 중 한 명은 세계여행을 하고 싶어서 기자가 됐다는 친구도 있었어요. 특히 BBC 특파원이 되면 어느 나라를 가든 거의 대사관급 대우를 받는다고 하네요. 집은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데 여기저기서 만찬 초청을 해온다고요. 기자윤리가 엄격해서 스스로 컨트롤하지 않으면 안된대요.


심층기사로 유명한 '옵저버'는 가디언의 일요판

독자들이 보내온 문구를 벽에 전시한 가디언


다시 가디언으로 돌아올게요. 가디언은 BBC와 달리 사무실이 잘게 쪼개져 있더라고요. 편집국도 큰 규모가 아니라 팀 단위로 쓰고 있는 듯했어요. 이중 신문을 만드는 팀은 20명이 조촐하게 일하고 있네요. 대세는 온라인이니까요.


인터뷰룸이 10개나 있었는데 4명이 들어갈 테이블이 있는 방이었고요. 복도에는 독자들이 보내온 문구들이 멋지게 인쇄돼 적혀 있었어요. 가디언은 지배주주가 없는 독립 언론입니다. 1821년 가디언 창립 후 초대 편집장인 C. P. 스콧이 죽으면서 주식을 기증했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지켜달라고 유언했대요. 이후 그 유언대로 회사를 꾸려가고 있고요. 그래서 가디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전세계에 많아요. 가디언이 순전히 독자들의 기부금만으로 500명이 넘는 기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있는 힘은 이처럼 독립언론으로서 신뢰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겠죠.


헨리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자들이 뉴스를 결정하던 시대는 지나갔어요. 독자들은 더 이상 읽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들은 에디터이자, 팩트체커이자, 컨트리뷰터이자, 디스트리뷰터입니다.”


톰슨로이터 본사 전경

로이터 광장

로이터 편집국

전세계에서 보내오는 기사들의 현황을 알려주는 모니터


로이터 Reuters


BBC와 가디언에 비해 로이터는 조금 낯선 회사일 수 있는데요. 뉴스를 자세히 보시는 분들이라면 사진 캡션에 ‘사진=로이터’라고 써 있는 것을 보신 분들이 있을 거예요. 로이터는 우리나라의 연합뉴스나 뉴시스처럼 미디어에게 뉴스를 공급하는 통신사입니다. 전세계 800여개의 미디어에 기사, 사진, 영상을 공급하고 있다고 해요.


로이터 본사는 캐너리 워프에 있어요. 약간 노란색 빛이 도는 뭉툭하고 커다란 건물이에요. 저는 여기로 15일 동안 출근했습니다. 로이터 앞에는 로이터 광장이 있어서 이 지역의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합니다. 직장인들이 퇴근한 뒤 여기 모여서 술 한 잔씩 하는 것 같았어요. 저도 몇 번 동참했습니다. 여기서 마시는 사이더(Cider)는 꿀맛이에요.



로이터 본사 1층으로 올라가면 창업자인 독일인 파울 율리우스 로이터의 흉상이 있어요. 1851년 그가 런던에 처음 회사를 세울 때는 주로 비둘기를 날려서 정보를 전달했대요. 이후 텔레그래프 시대를 거쳐 이제 스마트폰 시대까지 왔으니 변화가 엄청나죠? 2008년 캐나다 정보기업인 톰슨이 로이터를 인수한 뒤엔 전통적인 뉴스 생산보다 증권사 등에 금융속보를 전달하는데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고 해요.


편집국 중앙에 자리잡은 로이터TV


로이터에서는 2015년 로이터 TV를 만들었어요. 24시간 인터넷방송인데요. 주로 국제뉴스를 다룹니다. 편집국에 올라갔더니 로이터 TV를 만드는 부서가 가장 명당 자리에 넓게 자리하고 있더라고요. ‘뉴스의 넷플릭스’가 되는 것이 모토라고 하는데요. 전세계에 걸쳐 있는 특파원들이 보내오는 영상이 이곳에서 편집돼 다이제스트 영상뉴스로 만들어집니다.



영국 언론사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시설적인 면은 한국이나 별 차이가 없지만 마인드 자체가 다르다는 거였어요. 그들에게 미디어는 글로벌이에요. 기자들 경력이 아프가니스탄 몇 년, 아프리카 몇 년, 스페셜티는 프라하 막 이래요. 또 자발성을 강조해요. 데스크가 쓰라고 해서 쓰는 게 아니에요. 대부분의 의사 결정이 ‘탑 다운’이 아니라 ‘바텀 업’이에요. 그러니까 자기가 취재하고 싶은 분야 취재해서 쓰겠다고 하면 뉴스룸 에디터는 예산 배정해서 결정해주는 식이에요.


출입처에서 나오는 보도자료 받아서 쓰는 건 기자가 아니죠. 기자는 자기만의 관점이 있어야죠. 기자는 기사의 퀄리티로 평가받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에요. 잘못된 자료를 인용하거나 객관성을 해치면 기자로 살아남기 힘들어요. 대신 신뢰받으면 스타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어요.



한국에서는 국민의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꼴찌 수준으로 낮지만(20% 안팎) 영국에서는 50%대로 꾸준하게 유지되고 있어요. 이처럼 신뢰도가 차이가 나는 이유 중 하나는 기자들이 일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것 아닐까 싶어요. 시켜서 억지로 하는 일과 자발적으로 하는 일의 차이인 거죠.


로이터에서 만난 마이크 콜레트 화이트라는 기자는 중앙아시아와 중동 특파원을 거쳐 최근 6년 동안 아트&컬처를 취재했다는데요. 그가 남긴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그는 헤어지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제가 23년 기자일을 했는데 이처럼 환상적인 직업이 또 없어요.”


어떻게 살았길래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가 가고난 뒤에도 한참 동안 그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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