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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분장’은 남연우에 의한, 남연우를 위한 영화였습니다. 그가 맡은 오송준은 연극배우 지망생으로 트랜스젠더 연기를 준비하다가 동생이 게이라는 것을 알고 분노하는 남자 역할이었는데요. 우리가 성소수자에 대해 “이해한다”고 당연하다는 듯 말할 때 그것이 내 가족과 연관되어 있어도 가능한 것인지를 질문하는 영화였습니다.


지난 8일 남산골 한옥마을 국악당 카페에서 직접 만난 남연우는 눈매가 부리부리한 남자였습니다. 한 영화의 뒷풀이 자리에서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이해하고 말고가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며 넘어가는 게 굉장히 낯설게 들려 영화를 구상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이해’가 정말 성소수자들을 제대로 알고 하는 말인지 궁금했다고요.


남연우는 고등학생 때 비보이로 활동하다가 우연히 독립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영화에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연기가 너무 좋은데 주어지는 배역이 너무 적어서 자신이 직접 시나리오 쓰고 연출도 하고 있습니다. 마치 ‘라라랜드’의 엠마 스톤 같다고 말했더니 “어, 외모는 전혀 다르지만요” 하고 멋적게 웃네요. 앞으로 선한 ‘돌아이’ 같은 똘기 있는 배역을 꼭 해보고 싶다는 남연우와의 인터뷰를 영상으로 담았습니다.


©Youchang


"고등학생 때 비보이 활동을 하면서 우연찮게 독립영화에 출연하게 됐어요. 찍을 때는 이게 뭐하는 거지 했는데 완성본을 보면서 영화의 매력을 느꼈어요. 원래 체대를 가려다가 연극영화과로 진로를 바꿨어요. 그런데 대학에 다 떨어졌어요. 그래서 일찍 군대에 갔죠."


©Youchang


"제대하고 단편영화, 독립영화 현장을 찾아다녔어요. 연극을 하는데 어느 날 관객이 무섭게 느껴지더라고요. 아무 것도 모르면서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에 두려웠어요. 한예종에 지원했는데 운 좋게도 입학하게 됐어요. 그때 입시를 도와준 선배가 조진웅 선배님이요. 저에게는 은인이에요."


©Youchang


"졸업하는 해에 찍은 영화가 '가시꽃'이라는 독립 장편영화예요. 이 영화가 부산영화제, 베를린영화제에 가게 됐어요. 그때만 해도 제가 잘 될 줄 알았어요. 하지만 현실은 다르더라고요(웃음)."


영화 '분장' 중


"영화제 뒷풀이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옆 테이블 영화인들이 성소수자에 관한 대화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듣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아무런 문젯거리로 안 삼는 거예요.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 말들이 생각이 났어요. 그 사람들이 과연 정말 이해하고 있을까? 그래서 제 성소수자 친구에게 물어봤어요. 앞에서는 인정하듯 얘기하지만 뒤에서는 다르게 이야기하는데 그게 그들에겐 상처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이야기를 영화로 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프로필 돌리고 책(시나리오)을 기다렸지만 안 오더라고요. 프로필을 50군데 돌리면 2~3군데에서 단역 오디션 기회를 줘요. 목마름이 있었어요. 극을 끌고 가는 독립영화가 더 재미있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독립영화 쪽으로 많이 했어요."


©Youchang


"갈증이 심해져서 제가 글을 썼어요. 제가 좋아하는 배우들, 잘 하는데 숨겨진 배우들을 캐스팅해서 단편영화 '그 밤의 술맛'을 만들었어요. 준비하고 촬영하는 시간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 영화가 미장센 영화제에 출품돼서 정말 좋았죠. 미장센 영화제에서 만난 한 PD님이 프로듀서를 해주겠다고 해서 같이 준비했어요. 저는 당연히 찍을 줄 알았는데 투자가 안 들어오는 거예요. 검증이 안 된 연출한테 누가 100만원이라도 주겠어요. 그래서 제가 사비 1700만원을 긁어 모아서 영화를 만들었어요. 그 영화가 '분장'이에요."


영화 '분장' 중


"영화 속에 연극 객석 장면이 있어요. 400석을 채워야 하는데 과연 채울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일단 입금하고 극장을 빌렸어요. 일주일 전부터 사람들에게 연락했어요. 2시부터 5시까지 촬영인데 과연 얼마나 오실까 걱정이 많았어요. 50명 정도 오시면 카메라를 어떻게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죠. 당일날 제가 연기하기 위해 여장하고 무대를 딱 보는데 객석이 꽉 차 있는 거예요. 정말 눈물 나더라고요. 배우들, 음악감독들 다 부둥켜 안고 울었어요."


©Youchang


"연기할 때 행복해요. 연기할 기회가 많지 않고 나이는 들고 있고… 할 수 있는 역할을 최대한 많이 하고 싶어요. 오디션 기회가 적어서 시간 날 때마다 글을 쓰고 있어요. 이러다가 또 연출을 할 것 같아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연기를 더 하고 싶어요."


©Youchang


"거침없이 좋은 기운의 ‘또라이’ 역할을 하고 싶어요. 막무가내인데 피해를 안 주는 캐릭터요. ‘파이트 클럽’의 브래드 피트, ‘버드맨’의 에드워드 노튼, ‘127시간’의 제임스 프랭코 같은 역할이요."



남연우(35) 출연작

보이지 않는 오렌지에 관한 시선, 챔피언,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아기와 나, 분장, 석조저택 살인사건, 자유로, OJT, 격한 멜로, 연애, 마음이 닿으면, 혼자,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부산행,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로봇 소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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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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