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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못가노? 잘 가그래이! 철아!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


영화 ‘1987’에서 관객을 울린 대사는 유해진도 강동원도 아닌 김종수의 것이었다.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 옹을 연기한 김종수는 출연 분량은 짧지만 억울하게 아들을 잃고 울먹이는 아버지의 절절한 마음을 표현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김종수는 1985년 연극 ‘에쿠우스’로 데뷔한 올해 33년차의 배우다. 네이버 영화DB에서 검색해보면 그가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만 무려 46편에 달한다. ‘밀양’의 부동산 사장, ‘풍산개’의 남한 망명하는 북한 고위 간부로 풍산을 질투하는 지질한 남자, ‘소수의견’의 거물급 조폭 조구환, 드라마 ‘미생’의 김부련 부장, ‘아수라’의 악덕시장 박성배(황정민)의 심복 은충호 기획실장, ‘보안관’의 전직 형사 대호(이성민) 패거리 중 맏형인 횟집 주인 용환, ‘7호실’에서 어수룩한 교감 선생님을 꼬드기는 부동산 중개인 등 요즘 왠만한 한국영화엔 그가 보인다.


‘1987’이 장기 흥행 레이스를 이어가던 지난달 18일 충무로의 한 카페에서 배우 김종수를 만났다. 그는 작년말 모친상을 치러 영화 홍보에 거리를 두고 있다가 이날 처음으로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Youchang


Q. 영화 '1987'에서 박종철 열사 유해 뿌리는 장면이 감동적이다.

A. 부담이 많이 됐다. 사안이 주는 중대함도 있고, 또 유가족 분들이나 아버님이 여전히 아픔을 간직한 채 생존해 계시기 때문에 감히 배우가 어떤 표현으로 그걸 대변할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감독님한테 살짝 응석도 부려봤다.


영화 제작과정에서 그 장면이 첫 촬영에 첫 테이크였는데 그날 하늘이 도와주신 것 같다. 이야기 자체도 무거운 소재이고, 촬영 스태프부터 제작부, 연출부 모두 긴장하고 있는데 눈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갑자기 눈이 내려 더할 나위 없이 공간 연출이 스스로 되는 바람에 누가 서있기만 해도 그림이 되는 그런 신이었다. 고맙게도 내가 그런 역을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보시는 분들이 감정적으로 울음을 터뜨릴 수 있는 몇 군데 안 되는 신 중 하나라서 많이 회자되는 것 같아 고맙게 생각한다.


영화 '1987'


Q.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 옹을 직접 만나뵀나?

A. 연기하기 전에 아버님 눈을 보면 연기를 못할 것 같다는 겁이 났다. 그래서 찍고 나서 인사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작년 말 어머님이 응급실에 계실 때 그날이 영화 개봉날이기도 하고 어머니도 조금 안정이 되셔서 동생에게 부탁하고 조용히 혼자 가서 아버님께 인사드리고 왔다. 그날 다행히 컨디션이 너무 좋으셔서 말씀 나눌 수 있었다. 저희 어머니 편찮으시다고 하니까 기도도 해주셨다.



더 할 말이 없어서 아버님 발톱을 깎아드렸다. 어르신들 발톱을 보면 기름기가 하나 없다. 발톱 모난 데를 좀 깎아 드리는데 발톱이 막 부서지더라. 그래서 뾰족한데만 깎아드리고 갈아드리려는데 주위에서 잘못하면 피 철철 난다고 걱정을 하시더라. 근데 한쪽 발톱을 깎아드리니까 다른 한쪽 발을 내미시더라. 되게 고마웠다. 그날 오히려 내가 더 위안을 받고 온 기분이었다.


©Youchang


Q. 김종수에게 1987년은 어떤 해였나?

A. 나도 사실 편린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먹고 살기 급급한 세월을 살다보니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 기억은 하고 있었는데 이번 영화 찍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그때 나는 군대에 있었더라. 근데 나는 그런 세대였다. 대학 가면 부모님의 첫 말이 “데모하지 마라”인 세대 말이다. 노동운동이 강한 울산에서 학교를 다녔다. 학교 앞에서 데모가 벌어지면 백골단 친구들이 버스 안에서 가방 검열하고 그랬다. 나는 지방에 있다 보니까 통제된 뉴스만 접했다. 그래서 사건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체감은 그때보다 지금 더하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든다.


출처: 김종수 인스타그램


Q. 영화 ‘1987’을 본 주위 반응은 어떤가?

A. 나는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되게 큰 영광이다. 다행스럽게도 또 영화 자체가 주는 울림에 반해서 지인들이 많이 칭찬해줘서 쑥스럽지만 고마울 따름이다.


Q. 2016년 출연 영화 10편, 드라마 3편이었고, 2017년 영화 5편 드라마 2편에 출연했다. 엄청난 다작 배우다. 캐스팅 비결이 있나?

A. 아직은 단가가 괜찮아서? (웃음) 회차를 안 가리고 가니까? (웃음) 그런데 뭐 출연 분량이 많지 않으니 실감을 못하겠다. 지금도 집에서 노는 날이 더 많다. (웃음) 제의가 들어오면 왠만하면 거절하지 않고 하는 편이다. 내 나이 또래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많지 않다. 심지어 70대 역할도 나에게 오더라. 실제로 70대 배우는 현장에서 같이 하기가 쉽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쉬워 보이는 나에게 맡기는 거다.


©Youchang


Q. 정우성이 세운 기획사 아티스트 컴퍼니와 2017년 9월 계약해 한솥밥을 먹고 있다.

A. 김의성 배우와 ‘소수의견’과 ‘육룡이 나르샤’, ‘아수라’를 같이 하면서 친해졌다. ‘아수라’ 끝나고 문자가 왔다. “형 지금 회사 어디냐”고 묻더라. 그래서 9월에 계약 만료인데 연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의성이가 “형 우리랑 하는 게 어때?” 그러더라.


며칠 후 ‘아수라’ 시사회에서 정우성 배우를 만났는데 “의성이 형님하고 얘기하셨다면서요?” 그윽한 눈으로 약간 부처님 미소 지으면서 물어보더라. 이후 같이 술 마시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때 또 얘기를 했다. “형 어쩔거야?” 그래서 “할게!” 그렇게 됐다.



Q. 20년간 연극하다가 영화는 뒤늦게 시작했다. 스포트라이트 받는 젊은 배우들 보면 부럽지 않나?

A. 장단점이 있다. 나는 지금 지하철, 버스 타고 다니는데 그게 너무 좋다. 후배들 만나도 누가 따라다니면서 사진 찍는 사람도 없다. 자연인으로 살아가면서 적당한 인지도 즐기면서 이 직업을 할 수 있는 게 너무 편하다. (젊은 주연배우들에게도) 힘든 시기가 올 것이다. 자기만의 대가 지불을 어떻게든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냥 장난삼아 얘기하지만 실제로 크게 부럽거나 그러진 않는다.


영화 '플로리스'(1999)


Q. 다양한 역할을 해봤다.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A. 기회가 오면 로버트 드 니로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주연한 ‘플로리스’(1999) 같은 영화를 해보고 싶다. 늙은 게이 역할이다. 농담 삼아 후배들이 “형은 종로에 가면 게이들한테 먹힐 스타일”이라더라. 특히 배정남이가 그런다. (웃음) 지금까지와 선이 완전히 다른 역할을 해보고 싶다.


©Youchang


김종수(55) 출연작

영화: 마약왕, 1987, 7호실, 시인의 사랑, 보안관, 특별시민, 연애담, 아수라, 고산자: 대동여지도, 터널, 봉이 김선달, 양치기들, 무서운 이야기 3: 화성에서 온 소녀, 날 보러와요, 글로리데이, 검사외전, 소수의견, 스물, 몽골리안 프린세스, 소셜포비아, 남자가 사랑할 때, 스파이, 전설의 주먹, 아부의 왕, 홈 스위트 홈,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풍산개, 용서는 없다, 바람, 로맨틱 아일랜드, 밀양

드라마: 아르곤, 조작, 군주 - 가면의 주인, 뷰티풀 마인드, 미세스 캅 2, 피리부는 사나이, 육룡이 나르샤, 복면검사, 프로듀사, 징비록, 미생, 무정도시, 개과천선, 쓰리 데이즈, 총리와 나, 친구, 우리들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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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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